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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포츠 스타는 '반 연예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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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앙드레 김이 만든 옷을 입은 이천수(오른쪽)와 박주영 선수.

화장품 광고에 출연한 축구 스타 안정환(오른쪽).

홈런왕 이승엽(오른쪽)이 앙드레 김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했다.

최홍만이 링 위에서 테크노 댄스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꼭 이기겠습니다."

월드컵이나 주요 경기를 앞둔 축구 대표선수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천편일률적 대답이 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요즘 이런 '평범한' 말을 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재치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는 선수가 언론에 많이 나오고 팬에게 어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월드컵 대표선수들을 모아놓고 '인터뷰 잘 하는 법'을 가르쳤다. 1일 앙골라와의 평가전을 마친 뒤 김남일 선수는 "요즘 한국대표팀이 너무 잘나가 오히려 불안하다. 져야 팀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는 말로 유명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딕 아드보카트 현 대표팀 감독도 재치있는 말솜씨로 인기를 더한 경우다.

스포츠 스타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실력뿐 아니라 외모와 의상, 말까지 신경 쓴다. 요즘 스포츠 스타들은 우락부락하지 않다. 서울 청담동의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코디네이터가 골라주는 옷을 입는다. 소속 매니지먼트사가 연예인처럼 스케줄을 짜고 방송출연을 섭외한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퓨전 시대다. 스포츠 스타가 준연예인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가끔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는 축구대표 이천수 선수는 모델인 여자친구 김지유씨가 옷을 골라준다. 헤어스타일은 수시로 변한다. 노랑.파랑 등 다양한 염색으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자배구 삼성화재의 공격수 이형두 선수는 "감독님 눈치만 아니라면 좀 더 튀고 싶다"고 말한다. 프로야구 LG의 미남 스타 박용택 선수는 전지훈련을 가면 외국 패션잡지 수십 권을 사서 읽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다. 야구의 이승엽, 축구의 안정환 선수는 앙드레 김 패션쇼에 단골 손님이다.

경기단체도 인기를 위해 선수들의 옷치장을 장려한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해 프로로 전향하면서 남녀 선수들을 모델 아카데미에 보내 5시간에 걸쳐 화장법과 헤어스타일 강의를 받게 했다. 여자 선수들은 걸음걸이도 배웠다. 당시 선수들에게 강의한 헤어디자이너 오민씨는 "대중이 스포츠 선수에게도 보기 좋은 외모를 원하는 상황이어서 선수들도 '변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프로팀도 성적뿐 아니라 미디어에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를 연봉 고과에 반영한다.

씨름에서 이종격투기 K-1으로 전향한 최홍만 선수는 "이종격투기의 화려한 무대가 좋아 씨름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2m17cm의 거구임에도 머리카락을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링 위에서 테크노 댄스를 춘다.

스포츠 스타들의 외모는 인기.수입과 정비례한다. 미스코리아 출신 어머니를 닮은 소녀 골퍼 미셸 위는 연간 1000만 달러(약 100억원)의 스폰서 계약을 했지만 미셸 위보다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스폰서 계약을 하지 못한 선수도 있다.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그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호나우두.호나우디뉴.지네딘 지단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번다.

'얼짱 신드롬'을 일으켰던 여자농구 신혜인은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신세계에 입단했지만 1, 2위 선수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모았다.

스포츠와 연예가 점점 닮아가면서 교류도 많아진다. 야구선수 박찬호와 탤런트 차인표, 축구 고종수와 가수 홍경민, 야구 이승엽과 MC 김제동처럼 두 분야의 친구도 많다.

월간 스포츠비즈니스의 정희윤 대표는 "기본적으로 프로스포츠는 수익구조가 연예사업과 똑같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선수가 연예인처럼 외모나 이미지를 가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공정하다. 실력이 부족한데도 이미지만 높이는 경우, 테니스의 안나 쿠르니코바처럼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끼' 주체 못해 연예계 데뷔도

스포츠 스타의 연예계 진출도 늘고 있다. 씨름 천하장사 출신의 강호동과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강병규는 현재 방송 MC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연예계에서도 톱스타가 됐다.

최근엔 키 크고 몸매 좋은 여자배구와 농구 선수가 연예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성 3인조 그룹 미쓰리의 멤버인 박경윤은 억대 계약금을 받고 선경증권에 입단했던 뛰어난 농구선수였다. 섹시 화보를 낸 한지연은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얼짱으로 주목받은 뒤 연예계로 나왔다.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인 정유진은 누드 영상집을 냈고, 전국체전 태권도 여자 라이트웰터급 금메달리스트 윤아도 여성 트로트 그룹 LPG에서 늘씬한 몸매와 춤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쇼트트랙 스타 김동성 선수처럼 연예계 진출을 노리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빙상계로 돌아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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