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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北 전술에 넘어가···워싱턴 불쾌지수 높아질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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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워싱턴 한반도 전문가 7인이 본 신년사 국면

"김정은의 제안을 열망적으로 받아들인 한국은 평양에 약점을 내보였고, 워싱턴엔 동맹 결속의 의심이 싹텄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1월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는 워싱턴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신년사 내용뿐 아니다. 그에 따른 한국 정부의 발 빠른 대화 움직임도 한 묶음이다.
미 정부나 정보기관은 내용 분석과 향후 대응 마련에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엔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주된 플레이어가 돼 있다.

전문가 6인 “한·미 균열 노린 김정은 전술” #“한국, 북한 ‘수’에 넘어갔다” 분석도 다수

이들은 북한, 그리고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본지가 7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7명 중 6명은 “한미동맹을 갈라놓으려는 고도의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의 ‘불쾌지수’도 높아질 것으로 봤다.
전문가들의 주된 분석을 정리했다.

①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현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정은 신년사 메시지는 세 가지다.
첫째, 핵무장 국가로 인정받기. 둘째, 한미동맹 틈 벌리기. 마지막은 ‘값’을 얻고 평창올림픽 참가하기다.

김정은은 미국에 “이제 너희는 새로운 현실(핵 무장국가 북한)을 받아들이는 법과 북한의 새로운 역할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라”고 명령한 것이다. 김정은은 서울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와 대화 재개를 갈망한다는 걸 간파하고 썩은 올리브나무 가지를 서울에 내밀었고, 서울은 그걸 잡았다.

워싱턴에선 (동맹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워싱턴이 어려운 입장에 처한 게 아니다. 서울이 위험한 것이다.
만일 한미합동훈련 연기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 조건이라면 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순전히 한국의 공식 요청이었다면 긍정적으로 수용됐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핵심 목표는 한반도의 외교적·정치적·전략적 균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고 한·미가 북한의 핵 지위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정하는 조건으로 협상하기 위함이다. 한국은 이를 이해해야 한다.

김정은 신년사는 평양이 이 목표가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 시험하는 첫 시험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시험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북한으로 하여금 ‘목표는 이뤄질 수 있겠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것으로 보인다.

②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전 CIA 북한분석관) 

김정은에게 평창에 북한대표단을 보내는 건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를 갈라놓고, 나아가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무기 부분의 양보는 없고) 오히려 대량생산해 올해 그걸 사용할 것이라 했다. 내 걱정은 잠재적으로 서울과 워싱턴의 대북정책이 갈리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올림픽 참가를 논의하는)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는 사실 때문에 워싱턴이 화를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가 남북회담을 넘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예컨대 불법 석유거래 의혹이 있는 북한 선박에 대한 수색 횟수를 줄이거나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려 한다면 한미 간 이견과 갈등이 나타날 것이다.

③ 패트릭 크로닌 신미국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

김정은 신년사 대부분은 북한의 전통적 협상 전술로 가득 차 있다.

김정은은 아무런 대가도 내놓지 않으면서 한국에는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대량 생산할 것이지만 한국은 군사력 증강을 자제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시도다.

④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수석연구원

김정은 신년사는 대북 압박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남북 간 단기적 협력을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신년사의 수사들을 보면 한미 간 갈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빤히 드러나 있다.

내가 볼 때 한국과 북한이 대화하는 것 자체는 한미 간 관계를 상충하게 하진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단기 협조를 위한 ‘대가’를 원하는 북한과,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이란 기존 입장을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미국 사이에서 큰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난 기본적으로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대화의 목적을 평창올림픽과 9월 9일 북한창립 70주년 두 가지에 두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즉 (올림픽 기간) 몇 주간의 (합동군사훈련 연기) 조정은 미국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으로 보지만 북한이 가을까지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대화는 북한의 요구와 미국의 불타협 사이에서 함몰될 것이다.

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김정은의 신년사는 트위터가 아니다. 당과 군의 의견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고려된 메시지다.

신년사의 ‘반전’은 평창올림픽 참가 제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수많은 시도에 처음으로 김정은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미국에 대해 거친 표현을 쓰지 않은 것도 흥미롭다. 또 북한의 핵을 계속해서 ‘방어적’ 관점에서 설정했다.

난 북한이 한미 양국을 이간질하려 한다는 분석은 지나치다고 본다. 그런 증거가 없어도 그게 통념이 돼 버렸다. 미국의 전략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engagement)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 대화 제안은 워싱턴이 환영할 일이다. 동맹 결속을 위협할 일이 없다.

⑥ 데이비드 맥스웰 전 조지타운대 전략안보연구소 부소장 

김정은 가문의 발언과 행동에 대한 모든 평가는 한미동맹을 분열시켜 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 북한이 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갖도록 하는 전략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 신년사 제안으로) 한국으로부터 뭔가 물질적인 것을 얻어내는 것 말고도 한미동맹을 균열시키는 부수적인 이익을 얻으려 했다. 난 한미 양국이 북한의 이런 전략에 넘어가지 않도록 더욱더 깊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⑦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난달 29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키리졸브 훈련조차 연기되길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합동군사훈련에서 한국군을 빼는 걸 피해야 한다. 그건 북한이 원하는 바다.

김정은은 의심의 여지 없이 유엔 제재의 타격을 느끼고 있다. 아마 김정은은 올림픽 참가 카드를 한국에 주면 그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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