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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시아 간다더니 황량한 대로변…평창 무료 관람 사기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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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무료 관람” 따라갔더니 의료기 판매 '피해 주의보'

지난해 12월 22일 전남의 한 문화센터 이용자인 노인들을 태운 전세 버스가 도착한 강원도 평창의 대로변. 여행사 측은 '무료 버스 제공'과 함께 평창 올림픽 시설물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지만 기사는 노인들을 의료기기, 특산품 판매장으로 데려간 뒤 특별한 올림픽 시설물이 없는 곳에 차를 정차했다. 또 팁 명목으로 15만원을 받았다. [사진 독자]

지난해 12월 22일 전남의 한 문화센터 이용자인 노인들을 태운 전세 버스가 도착한 강원도 평창의 대로변. 여행사 측은 '무료 버스 제공'과 함께 평창 올림픽 시설물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지만 기사는 노인들을 의료기기, 특산품 판매장으로 데려간 뒤 특별한 올림픽 시설물이 없는 곳에 차를 정차했다. 또 팁 명목으로 15만원을 받았다. [사진 독자]

전남의 한 문화센터에 다니는 어르신 30여 명은 지난해 12월 22일 강원도 평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악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무료로 45인승 버스를 제공하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물 관람 팸 투어’라는 여행사 측 홍보와 달리 처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이천의 의료기기 회사였다. 개당 10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어르신들을 태운 버스의 두 번째 목적지는 인근의 건강보조식품 판매장이었다.

노인들 버스 태워 특산품 판매장 등 데려가 쇼핑 유도 #참가 노인들 "사기 당한 기분이다" 평창에 부정적 인상 #올림픽 시설물 관람 없었지만 여행사 측은 '문제 없다' #숙박업소 바가지 논란 이어 평창 이미지 훼손 #

오전 6시30분 처음 출발한 버스가 평창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30분 무렵. 안내를 맡은 버스 기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수㎞ 떨어진 지점이다. 주변에는 관람할만한 올림픽 시설물이 없었다. 어르신들이 “여기가 알펜시아 리조트인가요”라고 묻자 기사는 “알펜시아에 가도 별것 없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항의로 다시 차를 타고 ‘스키박물관’을 향해 출발했지만, 도착지의 상황은 비슷했다. 사정하듯 요청해 간신히 양떼목장을 구경하고 첫 출발지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11시30분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김모(67ㆍ여)씨는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었다”며 “다시는 평창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평창 무료 여행'을 홍보하는 전단. 여행사 측은 지역 특산품 판매장에 들르면 평창 올림픽 시설물을 견학시켜줄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견학이 아닌 특산품 구매 유도에 가까웠다고 참가자들은 주장했다. [사진 독자]

'평창 무료 여행'을 홍보하는 전단. 여행사 측은 지역 특산품 판매장에 들르면 평창 올림픽 시설물을 견학시켜줄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견학이 아닌 특산품 구매 유도에 가까웠다고 참가자들은 주장했다. [사진 독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무료인 것처럼 포장한 여행 상품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잇따라 주의가 요구된다. 무료로 올림픽 시설물 관람을 하고 특산품 구매도 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상품이지만 사실상 올림픽 시설물 관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논란이 된 여행 상품의 타깃은 주로 평창과 지리적으로 먼 지방의 노인들이다. 참가자 모집은 노인들이 이용하는 문화센터 등 지방 시설에 여행사 측이 관련 홍보물을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주로 전세 버스, 아침 식사를 무료 제공하고 유명 올림픽 시설물과 함께 지역 명소를 관람하는 대신 지역 특산품 판매장을 들러야 한다는 내용이다.

스키점프대를 축구장으로 개조한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사진 프로축구연맹]

스키점프대를 축구장으로 개조한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사진 프로축구연맹]

그러나 실제로는 지역 특산품 판매에만 초점을 맞춘 ‘가짜 여행 상품’이라는 게 참가자들의 목소리다. 아버지가 피해를 보았다는 한 네티즌은 “경로당 회장이 '평창 구경을 시켜준다'고 해 믿고 단체 관광을 갔다”며 “하지만 매트 판매장과 화장품 판매장, 한약방 등을 돌며 한 시간 이상 강의를 듣고 마지막에 시장을 잠깐 들렀다. 사기죄 성립이 가능한지 궁금하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겼다.

올림픽 시설물 관람도 실제로는 어렵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안전과 보안, 시설물 정비 등을 이유로 스키점프대 등 경기장에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애초에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여행사 측은 홍보물에 이들 시설물 관람이 가능한 것처럼 표현한 뒤 계약 과정에 ‘버스에서 관람’이라는 문구로 교묘하게 책임을 피해간다.

평창 알펜시아 빙설 대세계. [중앙포토]

평창 알펜시아 빙설 대세계. [중앙포토]

여행사 측이 약속한 무료 제공 혜택도 사실상 거짓에 가깝다. 일부 전세 버스 기사들의 경우 팁 명목으로 기름값을 요구한다. “아침 식사를 사올 곳이 마땅치 않다”며 준비를 단체 측에 떠넘기기도 한다. 노인들이 이용하는 피해 단체 관계자는 “기사에게 팁으로 15만원을 주고 무료 아침 식사도 우리가 준비했다”며 “기사는 내려오는 버스에서 블루베리 젤리를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여행사 측은 기사 개인의 잘못이라며 계약서대로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평창 특수를 노린, 사실상 허위에 가까운 무료 여행 상품은 여행사와 관광버스 기사, 특산품 판매장 등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물이다. 여행사 측은 고객들을 모집한다. 버스 기사는 이들을 태워 특산품 판매장으로 데려간다. 이곳에서 나오는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여행사 또는 기사들이 받는다.지난해 12월 22일 전남 지역 어른신들의 여행을 주관한 여행사는 관광버스 기사 16명이 모여 만든 곳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나오는 가짜 무료 여행 상품은 평창 지역 숙박업소들의 바가지 요금 논란과 함께 올림픽을 치르기 전부터 지역 이미지에 먹칠하고 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림픽 성화 봉송도 일정의 절반 가량을 마쳤다. 평창올림픽 스키점프 경기가 열릴 알펜시아 스키점프대를 배경으로 태양의 궤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16㎜ 렌즈로 오전 7시50분부터 오후 2시까지 1분 간격으로 장시간 노출, 촬영해 합성했다. [중앙포토]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림픽 성화 봉송도 일정의 절반 가량을 마쳤다. 평창올림픽 스키점프 경기가 열릴 알펜시아 스키점프대를 배경으로 태양의 궤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16㎜ 렌즈로 오전 7시50분부터 오후 2시까지 1분 간격으로 장시간 노출, 촬영해 합성했다. [중앙포토]

앞서 평창군은 지난해 올림픽 붐 조성을 위해 관광객을 유치한 여행사 등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단체 관광객을 유치한 여행사가 유료관광지 1곳, 전통시장ㆍ축제장 등 1곳을 방문하고 한 끼 식사를 할 경우 버스 1대(45인) 기준 25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9월 초 지원금 예산 1억여원이 바닥나 지급을 중단했다. 이후 손님들을 끌어모으려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여행 상품의 질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이 예정된 올림픽 플라자는 개방형이라 폭설시 취약하기에, 조직위는 플랜B로 강릉 아이스아레나를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이 예정된 올림픽 플라자는 개방형이라 폭설시 취약하기에, 조직위는 플랜B로 강릉 아이스아레나를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중앙포토]

심재국 평창군수는 “현재 올림픽 경기장 시설 마무리 정비를 하는 상황이라 관람객 입장은 금지된 상황”이라며 “무료나 적은 돈을 받고 올림픽 시설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것은 얄팍한 상술인 만큼 속지 말아야 한다. 올림픽이 시작되면 누구나 시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ㆍ평창=김호ㆍ박진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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