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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4년 만의 방문 … 이념에서 실용외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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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82년 8월 가봉 "우리 편 되어주시오"

2006년 3월 이집트 "우리가 투자하겠소"

#장면 1=1982년 아프리카 가봉. 전두환 대통령을 맞은 공식 환영식에서 방문국의 국가가 잘못 연주됐다. 북한의 국가였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는 가운데 군 출신이라 북한 국가를 잘 알고 있던 장세동 경호실장이 군악대장에게 달려가 손으로 연방 '×'표를 그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격분한 참모들은 "철수하자"고 했다. 전 대통령은 "사과를 받는 선에서 넘어가자"고 했다. 정상회담의 처음과 말미에 봉고 대통령은 두 번이나 사과했다.

앞서 노신영 외무부 장관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아프리카 순방을 건의했다. 전 대통령은 흔쾌히 수용했다. 이를 전해 들은 청와대 경호실과 비서실이 격노했다. "각하를 그런 험지에 보낼 수 있느냐"는 얘기였지만 외교부가 감히 청와대 경호.비서실을 통하지 않고 대통령과 '직거래'했다는 불만이었다. 당시 이범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방을 찾은 노 장관은 논쟁 끝에 "외교는 외무부가 하는 것"이라며 이 실장의 책상 위를 뒤엎어 버렸다고 한다. 순방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갔더니 모기도 별로 없고, 크게 덥지도 않더라. 오지에서 고생한다는 외무부 얘기는 거짓말 같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노 장관은 재직 중 아프리카 비동맹국의 맹주인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 공관장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유럽.아프리카.중남미 공관장들이 모여들었다. 역시 제3세계의 맹주인 인도의 뉴델리에선 아시아권과 미국 등 태평양권의 대사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첨예한 냉전시대에 비동맹 우호세력을 넓혀 북한 등 공산 진영과의 표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우리 외교의 전부이던 시절이다.

#장면 2=2006년 3월 이집트 카이로. 24년 만에 한국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찾았다. 외교의 주제는 '남북 대결 정치'에서 온통 '경제와 정보통신(IT).에너지.문화' 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이로는 현대.기아.대우차 등 한국차의 시장 점유율이 1위(40%)이고 삼성전자 제품을 갖는 게 상류층의 징표가 돼 있었다.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되는 가운데 '한류'는 대가족 사회인 이집트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한.이집트 정상회담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전자.자동차.석유화학의 투자를 좀 해달라"며 "필요하다면 이집트에 한국 기업 전용 산업공단도 만들겠다"고 했다. 이집트의 정보통신부 장관은 IT 인력 훈련을 요청하면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지닌 한국이 제3세대 이동통신 운영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제공하는 정부개발원조(ODA) 규모를 세 배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총 1억 달러 규모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 지원 의사를 밝혔다.

#24년간의 변화=번듯한 말과 이념보다는 외교의 수단이 다양한 분야의 가시적인 '효용'으로 변했음을 일러준다. 실용주의의 위력이다. 아프리카의 개발 지원에 대한 능동적 관심도 중요해지고 있었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 관리의 측면이다.

최훈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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