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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해안 1000㎞ 봉쇄 놓고, 한·미·일 vs 중·러 대결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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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이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유엔 제재를 피해 북한 유조선과 정유제품 밀수를 하다가 적발된 중국과 러시아 선박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 안보리 결의서 법적 근거 마련 #중·러, 대북 정유 밀거래 들키고도 #“유엔 제재 위반한 적 없다” 발뺌 #이번에 적발된 선박 포함한 6척 #중국 반대로 블랙리스트서 빠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오는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엔 한국전 참전 16개국+한국·일본·인도 등 19개국 외교장관 회의를 소집해 이 같은 불법 거래를 원천 봉쇄하도록 대북 바닷길 차단에 동맹국들의 동참을 호소할 예정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틸러슨 장관의 북한 해상차단을 지원하고 나섰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해 12월 29일 기자들에게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결의가 금지하는 거래를 하는 선박을 자국 항구에서 발견할 경우 나포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한국 정부가 북한 선박과 화물을 바꾼 홍콩 선적 선박을 억류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후 “이 같은 작전이 대북 해상봉쇄(Naval Blockade) 수준까지 갈 건가”에 대해선 “우리 군의 미래 작전이 어떻게 될지 추측하진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북한 정유제품 이전 경로

북한 정유제품 이전 경로

미 국무부도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유조선이 동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불법 환적(Ship to ship transfer)’ 방식으로 유류제품을 제공한 증거가 포착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러시아를 포함해 모든 유엔 회원국이 대북제재를 엄격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제유와 북한 석탄의 선박 간 환적 등 불법 거래를 차단하는 데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 정부가 안보리 결의에 따라 억류한 홍콩 선적 중국 배인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는 지난해 11월 14일 여수항에서 일본 정유제품 600t을 싣고 당초 목적지인 대만으로 가지 않고 같은 달 19일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북한 삼정-2호에 몰래 환적한 것으로 조사됐다. 러시아 유조선 비트야즈호는 지난해 12월 15일 1600t의 정유를 싣고 극동 슬라브얀카항을 떠나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 삼마-2호에 환적했다고 유럽 소식통들을 인용해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문제의 배들은 공해상에서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송신하는 트랜스폰더(무선 송수신기)를 끈 채 밀거래를 했지만 미국 등이 위성 사진 등을 통해 적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에 이어 러시아 외교부도 자국 선박의 불법 밀수거래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며 위반한 적 없다”고 밝혔다. 향후 대북 밀거래를 감시하는 한·미·일 정부와 중·러 불법 밀수 선박 간 추격전이 예고된 셈이다.

윈모어호와 삼정-2호 등 북한과 중국·홍콩 선박 6척은 당초 미국이 안보리 제재 블랙리스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10척에 포함됐지만 중국이 거부해 빠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해 12월 30일 전했다. 안보리에서 해상 밀수에 연루된 선박을 단속하려는 미국과 자국 선박 보호에 나선 중국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안보리에서 윈모어호가 삼정-2호와 나란히 멈춰 정유제품을 옮겨 싣는 위성 사진들과 또 다른 중국 화물선인 위위안(Yu Yuan)호가 안보리 제재 이후 북한 석탄을 싣고 러시아 사할린 남부 홀름스크항에 하역하는 사진을 제시했지만 중국의 반대에 막혔다고 한다. 대신 미국은 안보리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청진·원산·남포항 등 해안선 1000㎞를 봉쇄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2397호는 유엔 회원국이 북한과 불법 거래 의심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거나 영해를 운항할 때 정선·검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북 거래 의혹 파나마 유류선 평택항 억류=한편 북한 선박에 정유 제품을 넘긴 것으로 의심받는 파나마 선적의 5100t급 유류운반선 ‘코티(KOTI)’호가 평택·당진항에 억류돼 관련 기관의 조사를 받는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혐의가 확인되면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에 이어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북한 선박에 물자를 공급한, 한국 정부가 적발한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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