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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인 내가”“애 없는 내가” 간암 아버지 살린 30대 형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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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간 이식 수술 전 함께한 삼부자. (왼쪽부터) 형 김민배씨, 아버지 철주씨, 동생 성환씨. [사진 김민배]

간 이식 수술 전 함께한 삼부자. (왼쪽부터) 형 김민배씨, 아버지 철주씨, 동생 성환씨. [사진 김민배]

30대 형제가 간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서로 간 이식을 하겠다고 나섰고 결국 둘 다 부분 이식에 참여해 아버지를 살렸다.

민배·성환씨 간이식 아름다운 경쟁 #둘 다 간 크기 작아 한 명으론 안 돼 #45·35%씩 각각 떼어내 이식 성공 #“다 함께 식사, 가족여행 새해 소망”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김민배(36)씨는 지난해 9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2007년 간암 수술을 받아 완치됐던 아버지 김철주(62)씨가 간암 재발판정을 받아서다. 게다가 아버지가 모계 수직 간염 보균자여서 더 이상의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고민에 빠진 민배씨는 의사와 상의하다가 “간 이식 수술은 가능하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말을 들었다. 그는 “제 간을 이식해 드리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평창 겨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생 성환(34)씨가 제동을 걸어서다. 성환씨는 “아들 된 도리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형은 조카들이 있으니 내가 하겠다”면서 형을 만류했다. 자식이 없는 자기가 나서겠다는 것이다. 형 민배씨는 아들(7)과 딸(3) 등 1남1녀를 둔 가장이다. 형 민배씨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 너야말로 평창 겨울올림픽이 내년 2월에 개막하는데 수술로 인해 공백이 생기면 추후 너의 인생, 너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맞섰다. 성환씨는 2016년 11월 결혼한 신혼이다.

간 이식 가능 검사 결과 형제 모두 ‘이식 가능’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형제의 간 크기가 일반 성인들보다 조금 작아 한 사람의 것만으로는 이식이 불가능했다.

간을 이식할 때 이식하는 사람의 간 100% 중 65%만 이식이 가능하다. 최소한 35%는 남아 있어야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 모두 65%를 떼어낼 경우 남은 간 크기가 27~28%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결국 형제의 간을 조금씩 떼어내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 19일 형제는 아버지와 함께 수술대에 올랐다. 각기 다른 두 명의 간을 한 명에게 이식하는 수술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 이들 부자 3명의 간 이식 수술은 보통 일대일 수술보다 8시간이 더 걸려 22시간 만인 다음날 오전 6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형 민배씨의 간에서 45%, 동생 성환씨의 간에서 35%를 각각 떼어 아버지에게 이식했다. 수술 후 회복한 형제는 지난달 28일 같이 퇴원했다. 아버지는 현재 병원에서 건강한 상태로 회복 중이다.

지난 31일 아버지 병문안 길에 기자와 통화한 두 형제는 “수술이 끝난 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아버지가 쓰신 뜻밖의 메모를 보고 가슴이 짠하고 벅찼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눈을 뜨자마자 간호사에게 “스케치북을 달라”고 하더니 직접 ‘사랑한다. ♥’를 그렸기 때문이다.

형 민배씨는 “수술 전보다 빨리 피곤해지고,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뿌듯하다”며 “아버지가 빨리 회복하셔서 건강하게 퇴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생 성환씨도 “아버지께서 잘 회복하고 계셔서 기쁘고 앞으로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가족이 다같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고 말했다.

용인=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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