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최태원 비공개 독대 논란···정책실장 두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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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정책실장 아닌 비서실장이 재벌 총수 만난 까닭

청와대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12월 초에 만난 것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의 만남과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은 별개”(윤영찬 국민소통수석)라는 게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다. 청와대는 오히려 “SK뿐 아니라 다른 기업과도 만났다”며 개별 기업의 특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재계 “정책실 소통이 옳은 모양새”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이 개별 기업의 총수를 비공개로 독대(獨對)한 게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지난 7월 청와대에서 재계 총수와 호프 미팅을 했을 때 문 대통령이 ‘기업 얘기를 많이 듣겠다’고 한 것의 후속 조치로 비서실장이 총수들을 만난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재벌을 만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은 청와대와 재계의 비공개 소통 채널이고,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은 반(半)공개 소통 채널”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오른쪽), 장하성 정책실장(왼쪽)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오른쪽), 장하성 정책실장(왼쪽) [중앙포토]

임 실장의 UAE 방문(12월 9~12일) 직전인 12월 초에 두 사람이 회동한 데 대해선 “최 회장은 임 실장의 UAE 출장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최 회장이 UAE 관련 민원을 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했다. 이어 “당시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12월 13~16일)을 앞둔 상황에서 전반적인 기업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제 분야를 관장하는 장하성 정책실장 대신 임종석 비서실장이 기업 총수를 만난 게 의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실은 노무현·이명박 청와대에서 유지되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폐지됐고, 지난 5월 문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부활했다. 정책실이 비서실 산하에 놓이긴 했지만 정책실장도 비서실장과 같은 장관급이고, 기업 관련 애로사항을 접수하거나 소통하는 건 정책실장의 관할인 게 현재 청와대 조직 편제의 이치상 맞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에선 그러나 “물밑에서 청와대와 재계가 당연히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장하성 실장이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 설명대로라면 기업 담당인 정책실장은 만나지 않은 기업 총수를 비서실장은 만났다는 얘기가 된다.

10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문 대통령이나 임 실장과 만난 적도, 만날 시도를 한 적도 없다”며 “경제나 정책과 관련해 굳이 대화를 해야 한다면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소통하는 것이 옳은 모양새 아니냐”고 선을 그었다. 그리곤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문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과 만나고 싶어하고 또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의사를 전달받은 적은 있지만 더는 진전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임 실장이 만난 대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는 A사 고위 임원도 “청와대 관계자들과의 독대를 요청한 적도, 요청받은 적도 없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괜히 정경 유착으로 오해를 받을까 싶어 불필요한 의혹을 살만한 자리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그룹 비서실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재계 인사와의 만남을 자제해온 현 정부가 이런 재계의 분위기를 알면서도 SK그룹 오너를 비공식적으로 접촉했다면 뭔가 중대한 일을 논의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실장이 최 회장을 만난 걸 왜 공개 안 했느냐, 숨겼느냐고 하는데 최 회장을 만난 것과 UAE 일정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서 공개를 안 한 것”이라며 “비서실장의 비공개 일정을 모두 다 공개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정책실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서실장의 역할은 모든 분야를 다 총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청와대에서 기업인 호프 미팅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청와대에서 기업인 호프 미팅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그동안 청와대는 재계와의 비공식 접촉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지난 7월 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가 이틀에 걸쳐 호프 미팅을 한 것 외에는 언론에 접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난 20일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8대 그룹 고위 경영진의 만찬 간담회는 언론에 미리 알려지자 이틀 전에 일정을 취소했다. 역대 대통령이 거의 항상 참석하던 경제계 신년 인사회(3일)에도 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다.

허진·하선영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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