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각오해야한다|최우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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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경제 팀이 가장 먼저 다짐해야할 일은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적 사명이 그렇다.
지금 제6공화국에 대한 기대는 너무 높고 또 이미 좋은 소리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새 팀은 흙탕물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숙제는 6·29선언하듯 일도양단으로 풀리는 수가 있지만 경제는 그렇게 안 된다.
변혁을 하려면 욕을 먹게되어 있다.
오늘날 일본경제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케다·하야토」(지전용인) 수상도 현직 땐 욕 많이 먹기로 유명했다.
일본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선 『중소기업 몇 개쯤 망해도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가 중소기업을 경시한다고 국회에서 통산대신 불신임 결의도 당하고 『가난한 사람은 보리밥을 먹으라』고 했다가 어려운 사람들을 차별한다고 호된 성토를 당했다.
빈사지경의 영국경제를 그나마 살려놓은 「대처」수싱도 처음엔 인기하락으로 사면초가에 몰렸었다.
그러나 깊이 병든 영국경제를 치유하기 위해선 8∼1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 일관된 정책을 편 결과 영국경제가 이제 겨우 회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작년에 영국은 4%의 경제성장에 실업률 9·2%로 유럽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보였으며 재정작자도 l8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당장의 욕을 겁내지 않고 뚜렷한 비전으로 부인기의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다.
임명된 경제 팀엔 좀 가혹한말이지만 우리도 그런 강심장으로 하지 않으면 일이 안되게 되어있다.
선거공약만 해도 그렇다. 황망 중에 갖은 좋은 약속은 다했기 때문에 그걸 다하려면 GNP를 다 써도 어렵다.
다하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덤벼들지 말고『급한 김에 잘못했으니 용서를 빈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일의 경중과 완급을 잘 가려 순서대로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작년 1조원이 넘는 세계잉여금이 생겼다고 의욕적 추갱을 까는 일은 피해야 하는데 눈앞에 닥친 총선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경제면에서 금년엔 여러 변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21세기를 맞을 한국경제의 기본구도아래서 혹자경제로의 체질전환, 계층 간·지역 간 불균형의 시정, 경제운용의 자율화·민주화를 이룩해야한다.
변혁에 대한 기대는 한없이 높으나 그걸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하면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흑자체질로의 전환엔 산업재편에 따른 고통이 따르고 사회불균형의 시정엔 지금 나은 계층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경제운용의 자율화에도 반드시 손해보고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들 목청 높여 민주화와 불균형의 시정을 외치지만 기득권은 선뜻 내놓지 않으려 한다. 변혁이란 권력과 부와 명예가 재배 분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으례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럽게 마련이다.
「제로섬 게임」에서 이익 보는 사람은 가만있지만 손해보는 사람은 한껏 목청을 높이기 때문이다.
발등의 불격인 물가상승과 통상마찰의 대응에서 벌써 이해충돌이 표출되고 있다.
물가안정을 이룩하려면 돈을 줄이고 투기도 억제하는 등 고통스런 정책을 오랫동안 강행해야 하는데 국세청장이 약속한 투기꾼의 명단 공개 하나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수입개방이나 원화절상도 분명히 득 보는 층이 있지만 고통의 소리만 요란하다.
새 경제 팀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안정기조의 견지와 경제의 국제화는 좋은 소리 들어가며 될 일이 아니다. 죽도록 욕만 먹고 효과는 뒷날 천천히 나타나는 것들이다.
또 손 안대고 가만 둔다고 해서 현상유지가 되지도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악화되어 충격적 조처가 아니면 손 쓸 수도 없는 지경으로 가기 쉽다.
작년선거와 금년 정권교체 때문에 허송세월 많이 했다. 벌써 시간이 급하다.
새 경제 팀은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 욕먹을 일을 하는 것』이라고 체념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정면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집중성토를 당하는 것은 약과일 것이고 화형식이나 불신임 결의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점잖은 신사형의 나웅배 부총리를 비롯해 경제 팀엔 너무 가혹한 요구일지 모르나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자리를 맡았을 것이다.
물론 경제 팀이 욕을 먹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대처」 수상이나 「이케다」 수상과는 달리 경제 팀은 임명된 사람들이므로 소신껏 뻗대기도 어렵다. 불 인기정책을 펼 때 당장의 표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좋은 정책에 물을 타거나 아예 사람을 갈아버리는 사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요즘 같이 인기를 중시할 땐 더욱 그렇다.
이번 경제 팀이 그런 비운을 안 겪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혹시 그런 비극이 벌어지면 그건 새 경제 팀의 운이고 새 정부의 운이다. 동시에 나라의 운이기도 하다.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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