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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계부채의 뇌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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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부 차장

김원배 경제부 차장

“문과(文科) 출신은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핀테크(금융+기술) 분야 전문가에게 비트코인에 관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유행어로 ‘문과라서 죄송’한 상황이 됐다. 하지만 그 역시 “나도 비트코인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정부 당국자의 얘기를 들어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1일 “가상통화(암호화폐) 거래는 폰지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폰지는 후속 투자자의 자금으로 초기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주다가 먹튀하는 사기 수법이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27일 “나중에 비트코인은 버블이 확 빠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범죄에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다만 (암호화폐엔) 새로운 산업혁명의 성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블록체인(분산 원장) 등 신기술 발전에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뭔가 결이 다른 느낌이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을 처음 썼을 때 해외에 있는 친구들에게 e메일을 보내고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해서 샀던 기억이 난다. 그 시대 인터넷은 소박했지만 이용자에게 편의를 줬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실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런 의문이 해소되지 못한다면 비트코인은 신기루로 판명되고 말 것이다.

내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당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모아놓은 파생금융상품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지난 25일 외신은 미국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를 인용해 “비트코인의 가치가 제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예상이 맞는다면 비트코인 거래가 많은 곳일수록 타격을 받는다. 한국은 비트코인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높아 프리미엄이 형성된 곳이다.

더구나 한국은 가계부채가 1400조원을 넘는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꼽힌다. 비트코인이 쓸모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개미 투자자는 막대한 손실을 보고 기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암호화폐가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28일 암호화폐의 실명거래 의무화 등 추가 대책을 예고 없이 발표했다. 1차 대책을 내놓은 지 보름 만이다. 대책을 자주 내는 것은 정부가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간다는 방증이다. 구속수사나 법정 최고형 구형 같은 것은 엄포성으로 느껴진다. 시장이 믿지 않으면 대책의 효과는 반감된다. 제대로 준비하고 과감하게 실행할 때다.

김원배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