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잘 듣는 학생이 학교생활 성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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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의 달인은 ①쳐다보면서 ②받아쓰면서 ③맞장구치면서 ④생각하면서 듣는다. 첫째로 쳐다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고개를 숙이거나 옆으로 돌리면 청자의 귀의 방향이 화자의 입과 연결되지 않아 제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울 때도 입 모양을 보면 발음이 더 잘 들린다.

둘째로 회의나 토론에서 받아쓰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발언자별로 미리 칸을 나누어 놓고 기록할 수도 있고, 발언 순서에 따라 발언자의 이름과 발언 내용을 기록할 수도 있다. 회의록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①모든 내용을 다 적는 속기록 (stenographic record) ②간단한 일반 의사록 (minutes) ③그 중간 형태로 중요한 전말을 기록하는 절차 회의록 (proceedings) 등이 있다. ③이 ①이나 ②에 비해 어려운 것은 그때그때 핵심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도와 밭에서 고구마를 캐본 기억이 있다. 땅을 적당히 파고 나서 잔뿌리(細根)가 아니라 원뿌리(定根)를 잡아당기면 고구마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그러면 재미있다. 헛수고를 하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이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시시콜콜 다 적는 것이 아니다. 핵심단어(key word)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로 맞장구는 ①고개 끄덕임 ②표정 반복 ③감탄사 ④단어 반복 ⑤문장 반복 ⑥가벼운 질의 ⑦화자가 적절한 용어를 찾지 못했을 때 말해주기 ⑧해석 등이 있다. ①, ②와 ③은 지나치게 사용하면 경박스러워 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훌륭한 카운슬러는 ④와 ⑤만으로도 피상담자에게서 많은 말을 끌어낼 수 있다. ⑦과 ⑧은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진전되거나 신뢰가 형성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말을 곡해했다고 화자가 이의를 제기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화와 달리 공식적 토론에서 자신에게 발언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 맞장구라면 ①과 ②만으로 그쳐야 한다. 맞장구는 말하는 사람보다 작게, 낮게, 짧게, 그리고 반 박자 늦게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쳐야 한다. 그래야 흐름과 리듬을 타는 좋은 맞장구가 된다.

넷째로 생각하면서 듣기란 무엇인가. 좋은 성가대는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 등 각자 ①소리 내기 ②자신의 소리 듣기 ③자신이 속한 파트의 다른 대원 소리 듣기 ④다른 파트 소리 듣기 등에 4분의 1씩 정신을 집중한다. 이렇게 차이와 관계와 전체 속에서 자신의 말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면서 듣기다. 듣기의 달인은 듣기 편한 말뿐 아니라 듣기 불편한 말까지 경청할 줄 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릇을 키워야 한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wontak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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