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안대로면 자사고는 일반고 전환 시 빚더미 앉아" 외고·국제고·자사고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는 외고·국제고·자사고에 3년간 6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지역 자사고 학부모들이 자사고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가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는 외고·국제고·자사고에 3년간 6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지역 자사고 학부모들이 자사고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가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추진 중인 가운데 이들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하면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최근 발표한 재정 규모에 대해 자사고들이 "정부방침대로라면 일반고 전환은커녕 학교들이 빚더미 위에 올라 문을 닫게 될 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 "일반고 전환 시 3년 간 6억 지원" #자사고들 "기숙사 설립 등에 수백억 투자해" #"자사고 폐지 강행시 소송 불사하겠다"

자사고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대신에 정부가 일반고에 지원하는 연간 40억원 정도의 재정 지원을 못 받아왔다. 정부는 내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보다 먼저 학생을 뽑지 못하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해 자사고들로부터 "자사고 폐지 꼼수"라는 비판을 사왔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개정해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외고·국제고에는 3년간 6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자사고가 일반고 전환을 결정하더라도 기존 재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자사고 당시의 교육과정을 적용해 일반고로 완전 전환하는 데 3년이 걸린다. 정부는 일반고 전환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3년간 나눠  첫해는 3억원, 이듬해는 2억원, 마지막 해는 1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전국에서 사립·공립을 통틀어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총 84곳이다.

이같은 정부 결정이 나오자 자사고들은 “자사고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며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자사고들이 일반고 전환에 따라 입게 될 손해를 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자사고는 신입생 유치와 학교 발전을 위해 기숙사를 설립하는 등 이미 수백 억원을 투자한 상태다.

오세목 전국자사고연합회장(중동고 교장)은 “지금 일반고로 전환하면 그 손해를 전부 학교에서 감당해야 한다. 3년간 6억원은커녕 60억원을 지원해줘도 일반고로 전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학교와 학부모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자사고 측은 "2010년 자사고로 전환하면서부터 지금껏 포기해온 재정지원만 학교당 최소 300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일반 사립고의 경우 교육청에서 교직원 인건비와 교육과정 운영비 등을 지원한다. 이렇게 지원받는 금액이 서울의 경우 일반 사립고 한 곳당 연간 40억원에 이른다.  반면 자율형사립고는 국가보조를 전혀 받지 않고 법인 전입금과 학생 등록금만으로 예산을 충당해왔다.

오 교장은 “2006년 교육당국이 건실한 사학 법인을 선별해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라고 설득하며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대신, 학생 우선 선발권과 교육과정 운영 자율권을 보장해줬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의 경우 자사고 전환 후 학교법인이 자발적으로 과학실이나 음악실, 급식실 등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해 쏟아부은 돈이 200억원이 넘는다. 정부가 이제 와서 3년간 6억원을 지원한다며 일반고로 전환하라는 건 한 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외고·국제고 학부모들도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외고·국제고 폐지 관련 정책을 당장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고·국제고는 수월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학교들이고 학생들은 적성에 따라 공교육 체계 안에서 진학했는데도 특혜를 받는 것처럼 폄하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연복 전국외고국제고학부모연합회장은 “외고·국제고의 설립 근거를 법률로 보장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학교를 흔드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학부모들은 정부가 외고·국제고 폐지정책을 철회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11월 내년 고입부터 외고·국제고·자사고 입시를 일반고와 동시에 실시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이달 12일까지 의견 수렴을 받았다.
교육부 학교정책과 심민철 과장은 "총 70건의 의견이 수렴됐으나, 특목·자사고와 일반고 신입생을 동시선발한다는 입법예고 취지와 달리, '특목·자사고를 폐지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이 많아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 과장은 "개정안은 이달 말, 혹은 내년 초 확정될 예정이며, 2019학년도 고교 입시부터 적용할 것"이라 말했다.

전민희·박형수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