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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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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지식인들 사이에 「아르메니아 라디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소 연방 중의 하나인 아르메니아공화국 방송을 뜻하는 말은 물론 아니다.
정부당국의 검열을 피해 나온 사미즈다트 (지하출판)의 문학작품들을 그렇게 부른다.
그런 출판물에 왜 「아르메니아 라디오」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소수민족인 아르메니아인 들의 오랜 저항과 투쟁의 역사로 미루어 볼 때 대충 짐작은 간다.
소련·터키·이란 등 열강과 인접해 있는 아르메니아왕국은 예부터 끝없는 외침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BC7세기에 형성된 이 왕국은 BC1세기 로마의 침략을 받고 그 보호국이 된다. 7세기에는 페르시아와 동로마제국의 세력하에 들어가며, 11세기부터는 셀주크투르크와 「칭기즈칸」 「티무르」의 잇단 침입을 받아 모든 도시는 파괴되고 주민은 여러 나라로 흩어진다.
그러나 엄청난 민족적 비극은 15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종교는 그리스도의 단성설을 채용, 지옥의 개념과 기적의 해석에서 로마교회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엄연한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이슬람교도 터키인의 박대는 그야말로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도처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특히 1차대전이 일어나자 터키정부는 충성을 맹세하는 아르메니아인을 믿지 못하고 약1백75만명을 시리아등지로 이주시키면서 도중에 약 60만명을 대량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원한과 적개심이 폭력으로 변해 아르메니아 테러단체들에 의한 터키외교공관의 피습사건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인구가 약3백30만명인 아르메니아는 1936년 헌법에 따른 소 연방 재편성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에 속해 있던 나고르니 카라바흐 지역을 행정상의 이유로 시아파 회교국인 이웃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강제 편입한 것이다.
최근 그 나고르니 카라바흐 자치지구의 반환을 요구하는 아르메니아인의 시위에 1백50만명이 참가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민족의 자존을 위한 투쟁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가장 큰 분노로 발산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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