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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911 겨눈 레이서의 수공예품 'GT'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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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20면

메르세데스-AMG가 개발한 고성능 스포츠카 GT R.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AMG가 개발한 고성능 스포츠카 GT R. [메르세데스-벤츠]

지난 9월 중순, 메르세데스-벤츠 초청으로 메르세데스-AMG의 간판 스포츠카 GT 패밀리를 만나기 위해 독일의 낯선 서킷을 찾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메르세데스-AMG GT를 8번째로 많이 파는 시장이다. 역설적으로 ‘GT가 개척할 영토가 여전히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르세데스-AMG가 GT로 겨눈 실질적 맞수는 포르셰 911 시리즈다.

메르세데스-AMG GT 시승해보니 #스포츠카와 레이싱카의 경계 #교과서 같은 정직함이 매력적

메르세데스-AMG는 GT 데뷔 이후 부지런히 식구를 늘리는 중이다. 지난해 지붕을 떼 낸 GT 로드스터와 GT C 로드스터를 더했다. 올해는 이 시리즈의 기함인 GT R을 더했다. 내년엔 4도어 쿠페로도 나올 예정이다. 엔진은 코드네임 ‘M178’의 V8 4.0L 가솔린 트윈터보다.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47:53의 이상적 무게배분을 위해 뒤 차축에 물렸다. 모델별로 출력은 GT 476마력, GT S 522마력, GT C 557마력, GT R은 585마력이다. 전부 뒷바퀴 굴림이다.

시승회 출발점은 독일 바트 드리버그의 파더보른 공항. 청사 앞엔 알록달록한 GT들이 도열해 있다. GT C와 로드스터 버전은 이번에 처음 만났다. 가만 보니 GT와 GT S도 그새 화장을 고쳤다. 크롬 띠가 그릴 위에서 아래로 빗줄기처럼 쏟아진다. 1954년 300SL 걸윙의 콧날을 장식했던 ‘판아메리카나’ 그릴의 오마주다.

이날 시승의 전반은 파더보른 공항에서 빌스터 베르그 서킷으로 향하는 구간이었다. 난 GT C 로드스터의 키를 쥐었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디자인인데, 컬러마저 샛노랗다. 날씨는 대체로 화창했다. 기온이 15℃ 안팎으로 제법 쌀쌀했지만 과감히 지붕을 열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우렁찬 배기음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호젓한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자 로드스터가 버럭 뛰쳐나간다. GT C 로드스터의 0→시속 100㎞ 가속시간은 3.7초. 여기서 앞뒤로 10분의 1초는 큰 차이가 없다. 몸으로 느끼는 물리력보단 사운드나 바람의 영향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뚜껑을 연 GT C 로드스터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그래서 실제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엔진의 숨통을 트는 순간부터 심장 쫄깃해지는 고속까지 ‘감각의 과잉’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한 시간이 지날 즈음 지붕을 씌웠다. 소리와 바람을 배제하자 다른 특징이 드러났다. 포르셰 911과는 달리 급가속 때도 앞 차축은 묵직하게 노면을 짓눌렀다. 코너 감아 돌 때도 미묘한 무게중심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 늘 유쾌한 줄만 알았던 친구의 진지한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빌스터 베르크 서킷에 도착한 뒤 GT 패밀리의 기함 GT R로 갈아탔다. 헬멧을 쓰고 운전석에 앉으니 숨이 턱 막힌다. 몸을 옥죄는 시트 때문이다. 첫 랩은 몸 풀기. 테스트 트랙답게 구성이 다채롭다. 방심할 짬 없이 코너가 이어진다. GT R의 0→시속 100㎞ 가속시간은 3.6초로 GT C 로드스터보다 0.1초 빠를 뿐이다. 그러나 이후의 가속이 훨씬 더 강력하다. 살벌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나가면서 과격한 조작도 엄살 없이 차분하게 소화했다. 앞 유리 너머 광활하게 뻗은 보닛으로 노면을 꽉 누른 채 코너링 하는 과정에 우연과 요행이 비집고 들어설 틈은 없었다.

이 점에서 포르셰 911은 다르다. 때론 적당히 눙치고, 맞장구도 치며 운전자를 구워삶는다. 반세기 관록과 경험에서 나온 내공이다. 사실 뒷바퀴 굴림 포르쉐 911의 운전감각엔 말로 설명이 쉽지 않은 지점이 있다. 경쟁자들이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는데, 포르쉐 팬들은 매력으로 추앙한다. 실제로 운전대를 잡으면 묘한 희열과 성취감을 안겨준다. 기술력이 뒷받침된 기교다.

반면 AMG GT 패밀리는 오묘하거나 모호한 성격과 거리가 멀다. 교과서처럼 정직하다. 늘 입력한 만큼의 반응을 돌려준다. 그만큼 예측도 쉽다. 쿨한 스포츠카이고 싶어 하지만, 실은 레이싱카 뺨치게 진지하다. 기록으로 승부하고, 데이터로 복기하며, 경험으로 분석하는 레이서가 만든 스포츠카답다. 메르세데스-AMG GT의 가능성과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트 드리버그(독일)=김기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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