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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채금리 0.162%P 올라…필리핀·태국·인도 충격 클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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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18면

내년 미국 긴축 파장은

지난달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롬 파월(오른쪽)을 Fed 신임 의장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상원 인준을 통과해 내년 2월 취임하는 파월 의장은 리더십이 약하지 않느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롬 파월(오른쪽)을 Fed 신임 의장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상원 인준을 통과해 내년 2월 취임하는 파월 의장은 리더십이 약하지 않느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루틴(routine)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다.”

피셔·더들리 떠나며 중재자 없고 #파월의 카리스마도 기대 어려워 #볼커 이후 처음으로 내부서 이견 #“경기 회복 아직 더뎌” 신중론에 #“자연금리가 현 금리보다 낮아” #한국은 아시아에서 안전한 곳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의 말이다. 그가 지난달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지칭한 ‘그’는 바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다. 울프는 “옐런이 어느 정도 자신이 시사한 대로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며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촌평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옐런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기준금리를 1.25~1.5%로 조정한 것이다. 월가나 글로벌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예측대로였다. 올 들어 3번째다. 양적 완화(QE) 대신 달러 흡수에 나선 지 두 달 만이기도 하다.

지난주 금리 인상은 옐런이 2014년 취임한 이후 다섯 번째다. 블룸버그 통신 등은 “옐런이 내년 1월 말에 임기가 끝난다”며 “이번 인상이 그의 마지막 금리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후임자 제롬 파월은 이달 초 상원 인준을 받았다. 내년 2월 첫째 주에 의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Fed의 경기 진단은 묘비의 글귀만큼이나 반복적이었다.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는 이번에도 성명서에서 “경제가 완만하게 확장하고 노동시장 흐름이 탄탄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FOMC가 2012년 이후 경기를 내다볼 때마다 쓰는 표현이다. 가파른 경기 상승이나 갑작스런 경기 후퇴는 없을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Fed는 내년 성장률을 2.5%로 내다봤다. 올 3분기 성장률은 3%(연율)가 넘었다. Fed 예상치는 최근 흐름에 견줘 보수적이다. 옐런은 기자회견에서 “내년 경제가 4%까진 성장하지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4%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트럼프는 “임기 중 미 경제가 4% 성장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선 내년에 4% 성장을 달성하는 게 좋다. Fed는 2019년 성장률을 2%로 내다봤다. 내년이 단기적으로 경기 정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요즘 미국 국채 2년과 10년 만기 금리차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0.5%포인트 대다. 보통 월가에선 마이너스(역전) 금리차를 침체의 징조로 본다.

볼커-그린스펀 패러다임 부활

지난주 인상으로 Fed 통화정책 정상화가 “중요한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연방기금(Fed Fund) 금리가 기준금리로 본격적으로 활용된 1990년대 이후 약 30년 동안 기준금리 저점이 1~1.5%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된 제로 금리는 “극단적인 예외”였다(마틴 울프). 미 기준금리가 극단적인 예외 국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얘기다. 다만, 위기의 흔적은 남아 있다. 여전히 기준금리가 밴드(범위) 형태다. 1.25~1.5% 형태는 2008년 위기의 흔적인 셈이다. 이전까지는 2%, 또는 2.5%처럼 단일 수치였다.

임계점 이후 Fed 통화정책은 이른바 ‘V-G 패러다임’의 부활이다. V-G는 폴 볼커-앨런 그린스펀의 성 머릿글자다. 로버트 헤철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저서 『Fed의 통화정책(The Monetary Policy of the Federal Reserve)』에서 “볼커와 그린스펀이 Fed 역사상 처음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선제적으로’ 억제하는 기준금리 조절을 본격화했다”고 설명했다.

V-G 패러다임은 2008년 위기 전까지 Fed 내부자들이 본 ‘정상(norm)’이었다. 위기 순간엔 그 정상에서 벗어났다.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통화정책이 돌아가야 할 지점이 바로 그 정상이다. 임계점 이후 Fed는 물가 상승률이 기준선을 넘지 않도록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다만, Fed의 인상 속도가 볼커와 그린스펀 시대처럼 빠르지 않을 전망이다. 그때는 일단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매번 FOMC 회의 때마다 0.25%나 0.5% 포인트씩 올렸다. 요즘 Fed 내부자들이 정한 통화정책 정상화 시점은 2019년이다. 기준금리를 위기 이후 처음 올리기 시작한 2015년 이후 5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Fed는 2019년이 되면 ‘트리플 2%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성장률 2%대, 물가 상승률 2%대, 기준금리 2%대다.

Fed는 “2019년 연방기금 실효 금리가 2.9%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실효 금리는 기준금리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시중은행간 단기 자금 금리다. 내년엔 2.1% 수준으로 예측됐다. 또 내년 물가 상승 수준은 1.9%다. V-G 패러다임에 따라 물가가 억제 목표치인 2%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도록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리는 일이 이제 가능해진 셈이다.

연방기금 실효 금리가 내년에 2.1% 수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 목표치를 0.25%포인트씩 세 차례 정도는 인상해야 한다. 최근 실효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경우가 많아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전한 월가 전문가 전망(내년 3~4차례 인상 가능성)의 근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트럼프, 중도파 엘-에리언 임명 추진

통화정책 정상화가 Fed의 숙원이지만 이번 기준금리 인상이 만장일치로 되진 않았다. 현재 FOMC 멤버 9명 가운데 찰스 에번스 시카고 준비은행 총재와 릴 캐시커리 미니에폴리스 준비은행 총재가 반대했다. 2008년 위기 직후 Fed 컨센서스는 깨졌다. FOMC 멤버 가운데 늘 두서너 명이 QE나 기준금리 조절에 반대하곤 했다.

미 상품투자의 귀재인 데니스 가트먼 가트먼래터 발행인은 지난달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볼커 전 의장 취임 첫 해의 불협화음 이후 가장 뚜렷한 의견 불일치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볼커는 1979년 인플레이션 억제를 놓고 FOMC 내부 불협화음 때문에 거의 1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싸우지 못했다.

요즘 Fed 불협화음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선 근거가 부족한 분석방법이 즐겨 활용되고 있다. FOMC 멤버를 매파(물가안정론자)와 비둘기파(성장주의자)로 분류해 기준금리 조절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일단 내년엔 12개 지역 준비은행 가운데 클리블랜드·애틀랜타·리치몬드·샌프란시스코의 총재들이 의결권을 행사한다. 정기적인 의결권 교체다.

WSJ와 톰슨로이터는 “내년 FOMC는 중도파가 다수인 가운데 매파가 올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FOMC 부의장인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내년 중반에 물러난다. 후임자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전통적으로 뉴욕준비은행 총재의 발언권이 FOMC에서 컸다. 더들리 총재는 중도파로 스탠리 피셔 전 Fed 부의장과 더불어 FOMC 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통화정책 지도교수’로 통한 피셔는 이미 Fed를 떠났다. 더들리마저 물러난다. 파월은 카리스마가 크지 않다. FOMC 중재자가 사라지는 셈이다. 불협화음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트럼프는 Fed 공석 세 자리 가운데 서둘러 피셔 후임을 서둘러 정하려고 한다. 블룸버그 등은 “백악관 참모들이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자문을 후임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엘-에리언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빅 마우스(big mouth)로 통한다. 자신의 경기 진단과 전망을 서슴없이 말해왔다. 그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인민은행, 은행 간 금리 올려 ‘세미 긴축’

Fed 불협화음의 원인은 경기 진단의 차이다. FOMC 멤버들이 대침체 이후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금리 인상 찬성 쪽은 “경제가 완만한 기준금리 인상을 견딜 만큼 회복했다”고 본다. 반면, 반대 쪽은 “아직 아니다”고 주장한다. 로이터 통신은 “양쪽 충돌 지점이 좀 특이하다”고 전했다. 양쪽이 생소한 개념과 데이터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어서다. 바로 자연금리 또는 중립금리(natural rate of interest)다. 이 논쟁은 2013년쯤부터 본격화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 교수는 지난해 쓴 칼럼에서 “자연금리란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고 물가가 안정목표 수준이면서 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자금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금리”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가 자연금리보다 높으면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지만 경기는 둔화한다. 반대면 경기는 활성화되지만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진다.

문제는 자연금리가 시장 이자율이나 주가처럼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등을 활용해 ‘산출해야 하는 수치’다. 산출 과정에서 분석가마다 수치가 달라진다. 어떤 변수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서다. 그 바람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등은 “FOMC 멤버들 대부분이 현재 기준금리가 자연금리보다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며 “하지만 금리인상 반대 쪽은 ‘자연금리가 마이너스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인상이 경제에 해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전했다.(그래프 참조)

Fed 내부 논쟁과는 별도로 지난주 금리인상을 전후해 한국과 중국 중앙은행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한국은행(BOK)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올렸다. 중국 인민은행(PBOC)은 Fed 금리인상 직후인 14일(현지시간) ‘세미 긴축’을 단행했다.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대형 은행 간 단기자금 금리를 0.5%포인트 정도 끌어올렸다. Fed가 다섯 차례 기준금리를 올리는 동안 일시적인 자금이탈을 경험한 중국이 충격이 큰 기준금리 인상 대신 은행 간 금리를 조절해 대응한 셈이다. 반대로 러시아는 기준금리를 8.25%에서 7.75%로 0.5%포인트 내렸다. 올 들어 여섯 번째 금리인하다.

내년 Fed 긴축으로 한국의 금리는 얼마나 오를까.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가 Fed 긴축이 한국 등 주요 아시아 국가의 시장 금리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해 15일 내놓았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의 영향으로 한국은 10년만기 국채 금리가 0.162%포인트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과 더불어 Fed 긴축의 충격이 크지 않은 나라로 분류됐다. 이 분석대로라면 ‘미국발 이자대란’ 가능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반면 필리핀은 금리가 1.281%포인트 더 뛸 수 있다. 이어 태국과 인도·말레이시아·싱가포르 순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예측됐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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