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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의존도 낮추고 외교·경제 다변화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2호 02면

사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16일 귀국했다. 외교 결례와 ‘혼밥’ 논란부터 중국 경호원의 한국 기자 폭행사건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국 방문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새삼스럽게 여러모로 ‘우리에게 중국은 과연 어떤 이웃인지’를 되물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21세기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안보·경제·문화 등 어떤 분야에서도 우리는 물론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중요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도 다투어 베이징을 찾아가서 시 주석과 주요 현안을 논의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방중 결과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다. 심지어 ‘이 시점에 왜 중국을 방문했는지 모르겠다’거나 ‘우리가 얻은 게 하나도 없다’는 혹평도 쏟아진다. 알맹이 없는 정상회담과 중국의 무례한 외교적 태도, 여기다 한국의 저자세 외교가 한데 어우러져 총체적으로 굴욕적이었다는 자조도 나온다. ‘국빈 방문’의 의미가 과연 이런 것이었느냐는 반문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중국의 존재와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등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함께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국가다. 14억 인구의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을 떠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중국 전략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한다.

다만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만큼은 확실히 낮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만 깊숙이 빠진다면 다급할 경우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진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 때 우리는 이미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중국의 경제보복이 이어지면서 관광산업을 비롯해 자동차·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다행히 이런 경제보복에도 불구하고 올해 3분기까지 대중 수출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13.4% 늘었다고 한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정보기술 등 중국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가 수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경제적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은 경제·안보·한류 등 제반 분야에서 다변화에 매진해야 한다. 사드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바와 같이 ‘포스트 차이나’ 전략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문 대통령이 천명한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미래공동체 구상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저와 우리 정부는 아세안과 더욱 가까운 친구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아세안 10개국은 인구 6억3000만, 국내총생산(GDP) 2조6000억 달러에 연 5% 고도성장하는 잠재력이 풍부한 시장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범정부 아세안 기획단을 설치해 아세안과의 협력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아세안 주재 재외공관의 기업 지원 기능과 조직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일찍 중국에 진출했던 일본은 중국에 올인하지 않고 동남아 등 다른 시장을 활발히 개척했다. 그래서 지금 동남아는 일본의 텃밭처럼 돼 있다. 비록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도 더욱 아세안에 공을 들여야 한다.

비단 아세안을 중심으로 하는 신남방정책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중남미나 아프리카같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지역과의 교류를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중국의 치졸한 사드 보복에도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을 키울 수 있다.

중국은 이번에 우리에게 민낯을 낱낱이 내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한때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힘을 키우는 길인지 정말 깊이 숙고해야 할 때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시대를 열겠다’는 중국몽(夢)을 내세우는 이웃을 둔 우리다. 워싱턴에 부임했던 박정양 초대 주미 조선 공사가 1888년 우리를 속방으로 여긴 청나라의 집요한 간섭에 못 이겨 ‘힘없는’ 조선에 소환된 굴욕적인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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