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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50조 놓고 기재부 vs 행안부 '재정분권' 물밑 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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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권력이다 (Money talks)". 

이 말처럼 중요한 건 돈이다. 지방분권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간섭을 덜 받고 쓸 수 있는 돈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지방분권에서 핵심 중 하나가 재정분권이다.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관리해온 국세를 행정안전부(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세로 바꾸는 큰 작업이다. 여기에 걸린 게 최대 50조원이다.
이 큰 돈을 놓고 지금 기재부와 행안부가 뭍밑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행안부·기재부 등 범정부 재정분권 TF발족 …내년 2월 대통령 보고 #국세·지방세 비율 조정에 두 부서 겉으론 이견없어보이나 미묘한 차이 #행안부 쪽 "빠른 시일내 국세의 실질적 이전" 중요 #기재부 쪽 "투명한 관리 방안 마련필요. 서두를 필요없다" #문재인 정부, 분권강화위해 8대2인 국세·지방세 비율 장기적으로 6대4로

 문재인 정부는 현재 8대 2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7대 3을 거쳐 6대 4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세수 288조원 가운데 국세는 223조원(77.4%), 지방세 65조원(22.6%)이다. 이게 7대3이 되면 21조원, 6대4면 50조원이 지자체로 더 넘어간다. 여기에 한해 44조원 정도인 지방 교부세까지 포함하면 지자체로 가는 돈은 65조~94조원에 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6일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지방자치 기념식에서 자치분권 여수선언에 맞춰 각 지자체를 대표하는 상징색깔로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6일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지방자치 기념식에서 자치분권 여수선언에 맞춰 각 지자체를 대표하는 상징색깔로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돈을 둘러싼 기재부와 행안부의 줄다리기가 지금 시작돼 치열하게 밀당이 진행중이다. '총성 없는 돈 전쟁'이다.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산하에 ‘범정부 재정분권 TF’를 발족했다. TF는 내년 2월 대통령에 재정분권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13일 행안부 등에 따르면 위원회는 민간전문가, 기재부, 행안부, 자치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다. 발족 후 3차례 비공개 회의를 했다. TF단장은 지방재정전문가인 윤영진 계명대 교수(행정학)가 맡았다. 행안부에서는 김현기 지방재정경제실장, 기획재정부에서는 조규홍 재정관리관이 포함됐다. 재정분권을 위해 두 부서가 협의해야 할 문제는 새로운 세원발굴 등 다양하지만,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이 가장 덩치가 크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에 대해 적어도 겉으로는 행정안전부와 기재부간에 이견은 없다. 대통령이 뜻이 워낙 분명하기 때문이다. 분권 추진 주무부서라 할 행안부는 당연히 적극 추진이다. 김부겸 장관은 '분권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방 재정분권의 방향과 철학에 대해서는 기재부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중앙포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중앙포토]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두 부서간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저 국세와 지방세의 실질적 비율조정이다.  행안부 쪽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교부세 등 이미 넘어가고 있는 돈의 이름만 ‘지방세’ 혹은 ‘공동세’라는 이름으로써 명목상으로만 7대 3 또는 6대4로 가져가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지방으로 재원이 이전되기 전의 중앙과 지방의 예산 규모는 중앙 71.9%, 지방 28.1% 이지만, 재원이 이전된 후에는 국가 41.9%, 지방 58.1%다. 다시 말해 지방 재정구조는 중앙(국가) 이 세입의 72%를 가지는 구조인 반면, 세출은 지방이 60% 정도를 갖는 구조다.
행안부와 산하 연구원 쪽에서는 ‘지방교부세 등 국가(중앙)에서 지방으로 주는 재원을 지방세 등으로 이름을 바꿔 나눠주면서 7대3 비율을 이뤘다고 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익명을 원한 민간 지방재정전문가는 “재정분권에 관한 논의는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는데, 기재부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 교부세 등의 이름을 바꿔 지방세 비율을 맞췄다고 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행안부 고위 관계자는 “기재부쪽과 긴밀히 협력해 논의하고 있다. 방향성에 이견이 없다”면서도“재원의 실질적인 이전이 중요하다. 형식상의 이전은 안된다”고 말했다.

시기에도 차이를 보인다. 행안부는 7대3을 거쳐 6대4로 가는 것을 가능한 빠른 시일내 이루고 싶어한다. 6대4로 가는 시점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장기적’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심보균 차관은 최근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가능한 한 현 정부 임기 내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고려할 사항이 많은 만큼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국세와 지방세 조정에 대한 타임 스케줄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행안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기재부 내부적으로는 지방세 관리를 국세 수준으로 꼼꼼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가 여러 해 동안 문제 삼고 있는 낭비성 지역 축제, 초호화 청사 등 방만한 재정운용에 대해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지방재정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고 이에 대해 행안부도 동의하고 있다. 다만 기재부가 생각하는 제도의 수준과 행안부와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협의를 이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26일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 박람회에서 시도지사협의회장인 김관용 경북도지사(앞줄 왼쪽 셋째), 박성민 울산 중구청장, 양준옥 서울시의회의장, 이환설 경기 여주시의회 의장 등이 '자치분권 여수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26일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 박람회에서 시도지사협의회장인 김관용 경북도지사(앞줄 왼쪽 셋째), 박성민 울산 중구청장, 양준옥 서울시의회의장, 이환설 경기 여주시의회 의장 등이 '자치분권 여수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근 영남대 지역ㆍ복지행정학과 교수는 두 부처의 힘겨루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중앙정부에서 돈을 많이 따오는 단체장이 유능한 단체장이다. 그러니 창의적인 지방발전 아이디어보다는 돈 따는데 신경을 더 쓴다. 그래선 창의를 기반으로 하는 제대로 된 지방분권이 이뤄질 수 없다. 지방간 불균형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여러 가지 있지만 큰 틀에서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분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실질적으로 늘려야 하다.”

 염태정 기자, 세종=하남현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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