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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마나 한 직권중재 '불법파업이 협상 무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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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 밤샘 농성을 벌였던 한국철도공사 노조원들이 서울 이문동 차량기지를 떠나고 있다. 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2일 부평역 승강장이 전철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 파업으로 화물열차 운행이 중지되자 부산진역에 줄지어 서 있는 컨테이너. 부산=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철도노조가 중앙노동위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불법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직권중재의 효용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노조 측이 내부 투쟁 결의를 다지려고 직권중재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 깨버리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악법이므로 안 지켜도 별문제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정부는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 직권중재는 깨도 된다? ='직권중재 회부결정→파업 돌입'은 공식이 돼버렸다. 2004년 7월 19일 중앙노동위는 서울지하철노조에 대해 직권중재 회부를 결정했다. 그러자 노조는 곧바로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23일간 이어졌다. 2003년에는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직권중재 회부 결정(6월 5일)이 내려진 뒤 7개월여 동안 파업했다. 한국전력노조(현 발전노조)는 2002년 2월 25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과 함께 파업에 들어가 4월 3일에야 파업을 풀었다.

직권중재는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필수 공익사업장에 대해 15일간 파업을 할 수 없도록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직권중재 심의만 들어가면 어김없이 파업이 일어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 갈수록 줄어들지만=2001년 직권중재 건수는 16건이었다. 한 해 뒤인 2002년에는 무려 22건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직권중재 건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2003년에 1건, 2004년에 5건이었고 지난해에도 1건에 불과했다. 정부가 가급적 직권중재 남용을 막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번 철도공사의 노사 분규에 대해서도 중앙노동위는 지난해 11월에 직권중재 회부 결정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노사 양측에 교섭시간을 더 주기 위해 지난달 28일까지 석 달간 회부 결정을 유보했다. 그런데 철도노조는 28일 중재 회부 결정이 내려지자 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총 여덟 번의 직권중재가 있었지만 지켜진 건 단 한번이다. 지난해 7월 보건의료노조가 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려다 직권중재 결정을 수용한 적이 있다. 나머지는 불법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돌입했었다.

정부는 노조가 불법 파업을 풀 때면 예외없이 개입했다. 노동부나 관련 부처가 나서 노사 협상을 주도하고 사측에도 압력을 가했다. 노동계에선 "파업에 들어가니까 정부가 관심도 보이고 협상도 진척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철도노조 파업만큼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 긴급조정권으로 대체 추진 중=실효성이 떨어지는 직권중재를 긴급조정권으로 대체하겠다는 게 노동부의 계획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직권중재 제도는 노동자가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사전에 차단하기 때문에 독소조항"이라면서 폐지나 대체입법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노사정 협의가 진행 중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파업 자체는 막지 말라는 것이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직권중재의 경우 15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에는 대한조선공사, 93년에는 현대자동차, 지난해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 때 등 네 차례 긴급조정권이 발동됐으며, 발동 즉시 노조는 파업을 접었다.

김기찬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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