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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칼럼

음이온이 무조건 좋을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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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음이온은 특별한 화학적 성질을 가진 물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전자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원자나 분자를 뜻하는 일반명사일 뿐이다. 원자나 분자가 전자를 받아들이면 음(陰)전기를 가진 '음이온'이 되고, 반대로 가지고 있던 전자를 빼앗겨 버리면 양(陽)전기를 가진 '양이온'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이온이나 양이온은 본래의 원자나 분자와는 전혀 다른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 성질을 나타내게 된다. 보통의 화학물질이 그렇듯이 우리 몸에 좋을 수도 있고,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음이온이 무조건 몸에 좋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틀린 것이다.

음이온은 반드시 양이온과 함께 만들어진다. 음이온이 만들어지려면 전자를 제공해 주는 분자가 있어야 하고, 그런 분자는 전자를 잃고 나면 양이온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이온만 녹아 있는 물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음이온만 녹아 있는 물이 정말 존재한다면 전깃줄로 양이온이 녹아 있는 물과 연결해 전지(배터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전기를 가진 '이온'은 매우 불안정해 공기처럼 기체 상태로 존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음이온이 좋다는 광고에 소개되는 음이온의 양도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1㎖의 공기 속에 수천 개의 음이온이 쏟아져 나온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분자의 세상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공기 1㎖ 속에 들어 있는 질소와 산소 분자의 수는 무려 3000경(京) 개에 이른다. 0이 무려 19개나 붙어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결국 공기 1㎖에 음이온이 수천 개 들어 있다는 것은 공기 분자 1경 개 속에 하나의 음이온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뛰어난 첨단기술을 사용해도 그렇게 낮은 농도로 녹아 있는 물질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음이온의 효능을 자랑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은 '음이온'이 아니라 '오존'이다. 대부분은 높은 전압이 걸려 있는 금속 전극 사이에서 일어나는 방전(스파크) 현상을 이용한다. 전기 용접을 할 때와 같은 현상이지만, 아주 적은 양의 전류를 흘려주기 때문에 불꽃이 튀거나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방전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가 공기 중의 산소 분자를 깨뜨리면 오존이 만들어진다. 전압을 너무 높여주면 훨씬 더 단단한 질소 분자까지 깨져 몸에 해로운 질소 산화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오존이 살균과 탈취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요즘 음식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기 소독기가 바로 그런 오존을 사용한 것이다. 다만 전기 방전이 아니라 자외선 램프를 사용하는 게 다를 뿐이다. 정육점의 진열대에도 자외선 램프를 이용하는 오존 발생 장치를 사용한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는 오존을 사용한 공기청정기를 '오존 발생기(ozonizer)'라고 분명하게 밝혀야만 판매할 수 있다. 그런 장치를 신비의 음이온 발생기로 소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밀폐된 방 안에서 그런 장치를 너무 오래 작동시키면 오존의 농도가 위험 수위를 넘어 버리기 때문이다. 피부와 호흡기가 약한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정말 위험한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