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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행천국과 교통지옥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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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2부 기자

장주영 사회2부 기자

서울 을지로·퇴계로 왕복 6차로는 주중·주말 할 것 없이 붐빈다. 조명·인테리어 도매업체가 몰려 있는 방산시장, 철물점·인쇄점포 등이 길가와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길가 차로에는 수시로 화물차와 오토바이가 들락거리며 물건을 싣고 내린다. 양쪽 1개 차로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왕복 4차로다. 안 그래도 복잡한 이 일대 도로가 왕복 4차로로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내년 중 을지로~퇴계로~세종대로 등 총 6.45㎞ 구간의 차로 축소 계획과 교통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줄어든 차로를 시민의 보행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6차로를 4차로로 바꾸는 퇴계로·을지로 도로 재편은 내년 중 설계를 하고 2019년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세종대로는 차로 지하화가 포함된 광화문광장 재편안과 맞물려 추진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도심의 보행로를 넓히는 건 시민 입장에선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추진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이 지역은 차량으로 물건을 날라야 하는 도매상들이 밀집해 있다. 소매 중심의 상권이 발달한 유럽의 도시와는 여건이 다르다. 차로 한편에 늘어선 차량과 오토바이에는 이 지역 도매상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 차로를 줄이면 4차로는 2차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행천국이 되기 전에 교통지옥이 되는 셈이다.

물론 서울시는 교통 상황과 주민 의견을 고려해 추진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실제로 서울로7017을 개장하면서 회현역∼퇴계로 2가 구간 차로를 2개 축소하려다가 주민 반발과 교통난에 대한 우려를 받아들여 1개 축소로 바꾼 선례가 있다. 하지만 정책의 방향(차로 축소)은 정해 놓고, 주민 설득이 여의치 않으면 조정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차로 축소로 인한 교통 여건 변화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도로 무단 점유를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주변 상인과 주민들의 의견에도 적극적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

서울로7017을 비롯한 서울시의 보행 환경 조성의 벤치마킹 사례는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다. 폐철로를 재생한 하이라인파크가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는 손님이 많아졌다는 결과론 때문만은 아니다. 뉴욕시와 시민들이 10년 넘게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차로 축소 역시 서울시와 주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대형 프로젝트를 관(官) 주도로 밀어붙이는 것은 개발시대의 논리로 족하다.

장주영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