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외교적 파괴행위' 자처하고 나선 뜻은?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왜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 '외교적 파괴행위'(파이낸셜타임스)에 나선 것일까.

팔레스타인 궁지에 몬 다음 이-팔 평화중재 나서려는 속셈인 듯 #미 언론은 "러시아 스캔들 포위망 좁혀오자 지지층 결속 시도" #뉴스위크, "이번 결정에 '친 이스라엘 3인방이 영향력 행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오후 1시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배석시킨 가운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임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오후 1시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배석시킨 가운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임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회견을 통해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 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독·이슬람·유대교의 성지라는 성격보다는 관청들이 모여있는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단지 3개 종교의 심장부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민주주의의 심장부"라는 설명도 겻들였다. 트럼프는 또 "지난 70년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3개 종교, 그리고 모든 신앙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고 숭배할 수 있는 나라를 건설했다"며 "미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평화협정 촉진에 도움이 되도록 깊이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대로라면 예루살렘 수도 선언이 수십 년째 미해결 상태로 있는 중동분쟁에 오히려 평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이란 주장이다.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여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일단 궁지에 몬 다음 협상을 통해 자신의 협상력을 과시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노골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에 나서면서 이-팔 평화협정을 촉진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맡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맡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때문에 이번 발표는 다분히 국내적인 요인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특별검사의 러시아스캔들 수사가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가운데 핵심 지지층을 다잡아 국정운영 동력을 회복하려는 계산된 결정이란 것이다.

어차피 대사관 이전은 몇 개월 내에 실현될 수 없다. ABC방송은 "건설부지 조사와 시공업체 선정, 공사 등에 수 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결정의 낙진이 가라앉는 동안에 다른 나라의 반응을 살피는 시간을 버는 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트럼프는 이날 대사관 이전을 지시하면서도 당장 이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사관 이전 6개월 유예' 결정을 했다. 트럼프는 일단 눈 앞의 위기를 헤쳐나갈 정치적 과실을 챙기는 게 우선이며 나중은 어떻게 바뀌어도 개의치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뉴스위크는 이날 "굳이 이 시점에 화약고를 건드린 이유에 대해선 추측이 무성하지만 무엇보다 트럼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3인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먼저 트럼프의 대표적 '친 이스라엘 인사'는 널리 알려진대로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워낙 조용한 스타일 때문에 얼마나 이번 결정에 개입했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난 6월부터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등 이-팔 평화협상 재개 모색을 위한 행보를 추진해 온 점으로 미뤄 트럼프의 이번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게 미 언론의 공통된 추측이다.

트럼프의 중동문제 특사격인 제이슨 그린블랫 백악관 국제협상 특별대표의 역할도 주목된다. 1997년부터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을 맡아 온 그는 정통 유대교도를 위한 학교인 '예시바'에서 수학했다. 뉴스위크는 "그린블랫은 쿠슈너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 청사진을 고안해 온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지난 5월15일 이스라엘에 부임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예루살렘의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아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지난 5월15일 이스라엘에 부임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예루살렘의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아 기도하고 있다.

뉴스위크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인물은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 이스라엘 대사다. 가장 강경파로 분류된다.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서 고문으로 활동한 그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는 '베이트 엘의 미국친구들'이란 단체를 직접 이끌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주 이스라엘 대사로 지명됐을 당시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항구적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대사직을 수행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트럼프 정부 관리들을 인용,"트럼프가 프리드먼 대사에게 대사관 이전 시점까지 결정하라는 위임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수도권(워싱턴)지역 유대계를 이끄는 지도자 데이비드 슈나이어 유대교 성직자(랍비)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동기에 의문을 나타내면서 "그의 그동안의 전력으로 볼 때 다른 사안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수법"이라며 "'러시아 스캔들 조사'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