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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낼까 검난다-이제훈<경제부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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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며칠전 주식시세가 연일 무차별로 폭등할 때 『주가폭등 천정을 모른다』『증권열풍 이대로 좋은가』라는 제목으로 자제와 분별을 일깨우는 기사를 본지경제면에 크게 보도한바 있었다.
그전에도 물론 그랬고 그후에도 증시과열이 심각하다 싶을 때는 그런 종류의 계도성 기사를 다루어 왔다.
그즈음해서 몇통의 전화가 걸려봤고 또 혹자는 직접 반농삼아 말을 건네기도 했다.
『중앙일보가 증시호황(그쪽의 표현은 호황이지만 누구나 과열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 가장 비판적인데 삼성에서 증권회사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너무나 엉뚱한 시각과 발상에 실소를 금치 못했었다.
모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돈을 벌고 갈 되는데 누가 배아파할 것이며 나쁘게 얘기하겠는가.
문제는 호황이다, 주가상승이다 하는 흥청거림이 그만한 건실한 밑받침이 있는 것이며 또 주변과의 심각한 불균형 내지 위화감 같은 사회문제를 야기하지나 않을까 하는 관련성에서의 판단이다.
요즘 우리사회의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무언가 큰 일을 낼 것 같은 우려를 지울수 없다.
그중에 가장 먼저 손꼽아야할 것은 전국 곳곳으로 번지고 있는 투기열풍이다.
개발정보를 따라 산간벽지에까지 몰려드는 도시의 부동산투기자금과 일확천금의 소문을 듣고 논·밭 팔아 증권 투자하겠다고 몰려드는 농어민들의 발길은 어느 모로 보나 정상은 아니다.
이대로 가면 큰일이 안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지난달 국세청이 발표한 부동산투기의 한 사례를 다시 들춰본다.
염료제조업의 E산업 C모씨(50)는 싯가 5억원짜리 집에 고급외제승용차 2대를 굴리며 호화생활 하면서 처자명의의 98억원어치를 비롯, 전국 곳곳에 1백97개 필지 34만평(약2백84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조사결과 이 어마어마한 부동산 구입자금은 대부분 기업자금을 변태지출해서 마련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각종 세금을 탈세했다는 것이다.
C모씨의 경우는 하나의 예일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땅 투기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 되어 정부의 경제대책회의는 거의 이 문제와 관련되고 있다.
샐러리맨들이 은행돈을 빌고 농촌에서 소와 과수원을 팔아 달려드는 요즘의 증시풍속도는 또 어떤가.
불과 1주일새 혹은 한달새 기백만원 또는 기천만원씩 벌어 재미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증권이란 것이, 또 증권시장의 생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이돈저돈 끌어모아 달려들고 있는 판이다.
틈만나면 직장을 벗어나 증권회사 객장에 나가 앉아있는 직장인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런가하면 주식을 사놓고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번 사람들은 사우나를 즐기며 향락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된다.
돈을 쉽게, 그것도 엄청난 돈을 짧은 시일에 버니 돈 귀한줄 알길 없는 일이고 자연히 씀씀이는 헤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증시의 「신판 노다지」가 이 사회를 흥청거리는 분위기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부동산 졸부가 생겨나고 증권졸부가 생겨나고 있는 판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주식 값은 과연 끝없이 올라만갈 수 있는 것이며, 땅값이 마냥 뛰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게되면 요즘 우리 사회를 풍미하는 투기풍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 투기요소는 없을 수 없는 것이고 주식값은 경제발전·기업의 성장 또는 기업의 내용에 따라 오르고 내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상태나 기업성장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주식의 장래성도 좋다고 보아 무리는 없다.
그러나 지난 1929년 세계공황에서 경험했듯이, 또 작년10월19일 뉴욕을 시작으로 세계증시의 폭락현상을 겪었듯이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1929년 대공황도 20년대 중반 경제의 호황 뒤에 온 것이며 작년 10월 증시폭락도 약5년간 지속된 미국 경제의 호황 끝에 닥친 일이었다.
건전한 투자가 아니고 「머니게임」의 양상을 띤 투기 끝에는 반드시 큰 낭패가 따른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가.
더우기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 증권열기를 타고 달려든 주식투자자들 대부분이 샐러리맨과 농민·주부들이란 점이다. 어느날 경제내적 또는 경제외적인 요인에 의해 주가가 폭락한다고 할때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 투기 졸부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근로기풍의 저상과 사회의 위화감 등을 감안하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지는 것이다.
만연되는 투기풍조가 가져올 우려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당국이나 투자자 자신들은 모두 냉철하게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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