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은 봄」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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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입춘을 맞는다.
1년 24절기중의 첫 번째 절기다. 구정은 아직 안 왔어도 새해는 사실상 시작되고 있다.
이미 소한과 대한의 추위가 지나가고 새봄의 기운이 천지를 감싸기 시작하는 때다.
엊그제부터 사정없이 휘몰아 친 설한 풍이 새봄을 무색하게 하는 매서운 추위 맛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입춘은 역시 봄이 틀림없다.
어떤 의미에서 봄은 매서운 입춘 추위가 있음으로 해서 더욱 새로워진다. 사람들이 아직 차디찬 한 추위의 매서움을 체감하고 있을 때 봄은 소리 없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게 천지자연의 법칙이요, 조화다. 우리에게 봄을 가져다주는 천지의 운행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어김없이 또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아직 한겨울 추위가 무섭게 휘몰아쳐도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섭리를 믿고 따뜻한 가슴으로 대문에 입춘 방을 붙이게 된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거나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등 개인과 가정의 행운을 기원하는 글귀가 있는가 하면 「국태민안 가급인족」이나 「요지일월 순지건곤」등 나라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춘련도 있게 마련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늘 고난과 시련의 아픔을 되씹어야 했던 우리 선조들이 새봄을 맞을 때마다 은근한 기대와 희망의 기원을 그런 민속행사로 표출했던 점을 우리는 새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 현실의 아픔이 결코 옛날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늘 우리의 희망과 기대가 결코 옛날 선인들의 그것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인식도 크다.
실제로 대통령 직접선거의 결과로 새로 출범 하게되는 정부가 국민의 오랜 기원인 민주화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추진해 갈 것인가가 우선 걱정스럽다.
88서울올림픽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획기적인 나라의 발전도 가져올 수 있는 가도 온 국민의 고심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그 두개의 과제를 성취하는데는 너무도 많은 장애가 있다.
그 동안 누적되었던 우리사회의 온갖 불의와 부정부패들 깨끗이 몰아내야 하는 엄청난 과제도 있으며 광주사건과 같은 뿌리깊은 원한과 불만의 요소를 해소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며 민주발전과 올림픽마저도 방해하려고 하는 북한집단의 도발위협도 상존 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제발전을 시샘하는 무역개방, 환율 인상 같은 선진 각국의 끈질긴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거기에 황금만능, 물질숭배의 풍조 속에서 타락의 병으로 신음하는 우리사회의 그늘도 짙다.
집단으로 칼을 휘두르며 인명살상을 예사로 하는 범죄의 폭주는 특히 이 겨울을 더욱 음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도 결국은 물러가게 마련이다. 봄기운은 매서운 바람을 넉넉히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입춘의 기원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도 넉넉히 풀어 줄 것이다.
우리가 따뜻한 봄날 같은 마음을 되찾게되면 우리의 민주화 도정도, 올림픽 성공도, 국민화합의 난제도 모두 술술 풀리리라고 믿어진다.
입춘을 맞으며 우리 스스로 따뜻한 봄을 맞는 자세를 가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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