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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적자 계속되는 한 압력|「한미 통상마찰 격낭」 어디까지 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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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은 작년 말 이후 올 들어서 부쩍 우리 나라에 대해 통상압력의 고삐를 죄고 있다. 마치 이번 기회에 결판을 내기라도 할 듯이 그 동안 쌓았던 대한 통상불만사항의 보따리를 풀어 젖혀놓고 통상법 301조 발동 내지 GATT 제소를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한미 통상마찰의 격낭은 어디까지 갈까.
아마도 1조달러를 넘는 미국의 빚더미가, 또 2조3천억달러에 이르는 미정부의 재정적자가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라는 해답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선 미국의 무역적자나 재정적자가 개선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 만큼 한미 통상마찰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이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된 것은 철저하게 미국인들 자신의 책임이라 하더라도 아무데나 301조의 난폭한 「뿔」을 휘두를 정도로 「미국 소」를 흥분시킨 것은 일본·서독을 비롯한 대미 흑자국들의 책임이 크다.
다시 말해 일본·서독 등 우리보다 훨씬 앞서간 대규모 흑자국들이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너무 심화시킨 것이다.
그간 대한 통상문제를 다루는 미 정부와 업계의 태도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들은 이제 과거의 자국민대우(National Trearment) 원칙에서 상호주의(Reciprocal Treatment) 원칙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의 기본정신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제도나 법규상 그 나라 국민과 동등한 대우 (자국민대우)를 받으면 공정한 거래라는 것인데 다급해진 미국은 자기네 기준과 동일한 거래관행(상호주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워싱턴의 미 통상관계자들은 이제 한미간의 협상이 논리적인 해결단계를 지나 국가간의 신의에 이미 금이 가 있는 상태 (Credibility Crisis)이므로 301조 발동이나 GATT 제소와 같은 물리적인 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혀가고 있다.
예컨대 지난 86년 9월 담배수입을 튼 뒤로 우리는 계속 『곧 수입담배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날테니 두고 보라.』는 식으로 미측을 달래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도 수입담배의 시장점유율은 0·4% 미만이다. 거의 비슷한 경우를 당한 대만이 15∼20%, 일본이 1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미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요즘 다시 301조를 들먹거리고 있는 「2백만권의 무단복제 서적 시판」 문제도 미국으로서는 얼마든지 국가간의 신의를 걸고 나올 수 있는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셋째, 한미통상문제가 곧 닥칠 미국의 대통령·의회선거전에서 「핫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크라이슬러사의 K카가 한국에서 4만8천달러에 팔리고 있다는 최근 미 민주당 「겜하트」 의원의 TV 유세광고에서 그 조짐이 보이듯 한미통상협상이 정치논리에 따라 표류하게 될 때 어떤 결과가 올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두드러지는 위와 같은 태도변화가 아니더라도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의 파상공세가 앞으로도 계속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끝없이 이어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쇠고기만 하더라도 미측은 내년부터 일반쇠고기·슈퍼마킷용의 개방문제를 협의하자고 나오는가 하면 항공·해운·통신·광고·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현안들을 제기중이고, 심지어는 조달청의 정부구매물자 국산 우선의 원칙과 같은 문제까지도 불공정 거래관행의 표본으로 거론하고 있다.
미측의 파상적인 개방공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개별케이스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이어야만 할 수밖에 없다.
품목별 개방일정은 협상테이블에 그때그때 마주앉아 하나하나 풀어갈 수밖에 없지만, 개방문제는 근본적으로 국내의 산업구조조정, 계층간의 이해득실에 대한 정책적 보완, 국민전체의 인식전환노력, 나아가서는 경제운용 전반의 틀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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