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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건강여든간다]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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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애들이 무슨 스트레스-'. 하지만 부모의 사랑 속에 마냥 즐거운 듯 보이는 아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어린이에게 작용하는 스트레스도 두 얼굴을 가진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하려면 부모는 아이의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 신체 증상이 뚜렷하다=티 없이 맑은 어린이일수록 스스로 방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어릴수록 스트레스 상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어른은 힘든 상황을 맞으면 적절한 탈출구를 찾지만 대응능력이 없는 아이는 신체 증상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과 유한익 교수는 "어린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땐 일반적으로 복통.두통.불면증.신경질 등을 보이지만 스트레스와 무관해 보이는 기침.구토.열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들려준다.

평상시 정서.성격.행동 등에 문제가 있다면 스트레스는 기존의 문제점을 더욱 악화시킨다. 유 교수는 "평상시 눈을 깜빡거리는 정도의 틱이 있던 아이가 교내 콩쿠르대회란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틱이 심해져 노래를 못하고 내려올 정도"라고 밝힌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성향이 있는 아이가 치료를 못 받고 혼만 나면 스트레스만 받는다. 따라서 아이는 산만증과 충동적 행동이 심해져 교우관계가 악화되고 정상적인 학교 수업이 힘들어진다.

◆ 스트레스 증상은 꾀병이 아니다=아이가 신체증상을 호소할 때 부모는 꾀병이 아니라 정말로 불편해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대의대 소아과 은백린 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증상은 대부분 검사를 해도 뚜렷한 원인을 못 밝힌다"며 "이때 부모가 꾀병으로 오해하고 가볍게 생각하면 병을 키운다"고 조언한다. 아이가 느끼는 스트레스 상황이 통증을 유발할 뿐 아니라 질병을 초래하거나 악화시켜 만성질환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아이에게 신체적 질환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부모는 아이의 스트레스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주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 자녀를 제대로 파악하자=우선 '내 자식은 내가 잘 안다'는 식의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대신 진솔한 마음으로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유한익 교수는 "똑같은 상황이라도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이가 있다"면서 "부모는 내 아이가 어느 정도 스트레스 상황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라"고 권한다.

부모가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부모가 경쟁적이고 완벽주의자라면 아이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마련. 예컨대 '최고가 돼야 한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경쟁심을 부추기는 상황은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따라서 아이에게 경쟁심을 유도하고 싶을 땐 '경쟁은 발전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늘 이길 수는 없다'는 식의 생각을 심어주는 게 낫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이라면 사전에 스트레스 상황을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험 때만 되면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에게는 "시험을 너무 힘든 과정으로 생각하면 배가 아프고 시험 성적도 떨어지지만, 실력껏 본다는 생각을 하면 배도 안 아프고 시험도 편안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또 아이에게 긴장된 상황을 늘 제공하면 아이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100m달리기를 막 끝낸 힘든 상황(스트레스)에서 또 학습을 시킨다면 집중력.인지력 등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공동기획 : 대한소아과학회

#사례 1 11살(초등 4), 남자

■증상:정수리 부위에 동전 크기만큼 머리카락 빠짐. 산만함

■진단: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증

■부모의 양육태도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심은 있음. 아이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편. 아이는 놀 생각만 하니 하루 일정표는 부모가 관리해야 한다고 믿음. 아이에게 1주일 내내 학원 등 과외활동(7가지) 시킴.

■상담 결과

처음엔 피부과에서 원형 탈모증 진단하에 약물치료. 일시적 효과. 이후 소아정신과로 전원해 상담. 꽉 짜인 일정표로 아이가 심한 스트레스 상태라는 결론에 다다름

■치료 및 경과

아이의 학습량을 3분의 1정도 줄여줌(과외활동 2가지만 함). 자유 시간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놀게 함. 어머니와 하루 1시간은 꼭 공부 이외의 대화나 놀이 시간을 가짐. 3개월 후 원형탈모증이 완전히 없어짐. 산만함도 개선

#사례 2 6살(초등 1), 여자

■증상:수시로 반복되는 복통으로 병원 치료

■진단:스트레스성 만성 반복성 복통증후군 (검사상 위장.대장에 질병은 없음)

■부모의 양육태도

어머니와 하루종일 같이 있는 편. 아이가 사소한 잘못을 하거나 또래보다 뒤처져 보일 때 늘 혼냄.어머니가 예민한 성격임(아이도 예민한 편). 또래가 하는 과외활동은 모두 시킴.(5가지)

■상담 결과

복통이 혼나거나 혼날 일을 했을 때, 잘못을 지적받을 때, 친구와 싸운 뒤 등의 상황에서만 나타남. 배만 아프면 아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복통을 호소.

■치료 및 경과

복통에 대한 약물은 치료 당시에만 효과를 봄. 과외활동은 아이가 좋아하는 수영만 시킴. 잔소리를 줄이고, 또래보다 못해도 아이에게 '괜찮다'고 격려. 동시에 감정을 조절하는 약물(SSRI)을 3개월간 복용.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통을 호소하지 않고 잘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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