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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레저] 고로쇠액 骨利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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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산촌마을. 우뚝 솟은 축령산(해발 889m)의 칠부 능선에는 1만여 그루의 고로쇠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아직 눈도 다 녹지 않았다. 잔설 가득한 골짜기와 발밑에서 올라오는 봄, 그 사이에서 고로쇠 나무는 수액을 토하고 있었다. 아직도 산속의 밤은 춥다. 그 밤에 고로쇠 나무는 뿌리로 물을 빨아올린다. 깊은 산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 그걸 온몸 가득 머금는다. 그리고 낮이 되면 내뱉는다. 햇살에 봄이 세게 섞일수록 더 많이 내뱉는다. 그래서일까. 고로쇠액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클수록 제 맛이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캐나다에서도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한다. 그걸 마시기도 하고, 농축해 잼을 만들기도 한다. 캐나다의 단풍나무숲은 대부분 벌판에 있다. 그래서 산속 깊은 곳에서 수액을 채취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산이 깊어야만 고로쇠액을 채취할 수가 있다. 산촌마을 작목반장 이기연(59)씨는 "국내에서 고로쇠액은 '악산'에서만 난다"고 말했다. 거친 산이란 얘기다. 험한 바위나 깊은 골짜기가 있어야만 고로쇠액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설악산, 운악산, 화악산 등 '악'자가 붙은 산에선 어김없이 고로쇠액이 나와요." 국내에서 가장 거칠다는 지리산도 주요한 고로쇠액 산지다.

눈 사이에 서있는 고로쇠 나무에는 젖줄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드릴로 천공을 내서 만든 채취관이다. 그걸 타고 수액이 한두 방울씩 뚝뚝 떨어졌다. 나무에 구멍을 낸 뒤에 관을 꽂아두면 두 달 동안 약 4ℓ의 수액이 흘러나온다. "'봄 도다리, 가을전어'란 말이 있잖아요. 고로쇠액은 요즘이 제철이에요.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 사이에 나는 고로쇠액이 가장 맛이 좋죠."

산촌마을 사람들에겐 고로쇠액이 열 아들 안 부러운 '효자'다. 산촌마을 허상(50) 이장은 "농한기 때 고로쇠액을 채취하기에 농가 소득에 큰 몫을 한다"며 "2~3월에 고로쇠액이 18ℓ짜리로 1200통이나 나온다"고 말했다. 18ℓ짜리 한 통에 5만원. 택배 비용 없이 전화(031-592-8987)로 주문할 수도 있다. 고로쇠액은 '신비의 약수'라고 불린다. 대체 어떤 물일까.

*** 전설의 시작

고로쇠는 오래전부터 민간요법에서 사용됐다. 유래를 따지자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였다.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장소는 지리산. 양국 군사들은 격렬한 전투를 벌인 뒤 파김치가 됐다. 지친 몸보다 병사들을 괴롭힌 것은 타는 갈증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주위에는 물이 없었다. 그때 화살이 박힌 나무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병사들은 입을 갖다대고 그걸 마셨다. 그러자 갈증이 말끔히 해소됐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고로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도 '고로쇠'란 이름은 한참 뒤에 생겨났다.

통일신라 시대였다. 도선대사가 이른 봄에 백운산 깊은 곳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오랫동안 좌선하던 도선대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대사는 곁에 있던 나무를 붙들었는데 가지가 뚝 부러졌다. 그리고 거기서 물이 나왔다. 도선대사는 수액으로 목을 축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무릎이 펴졌다. 대사는 뼈에 좋은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게 '고로쇠'의 어원이라고 한다.

*** 1년 내내 나오나요

아니다. 늦겨울과 초봄에만 나온다. 2~3월 중에도 날씨가 추우면 안 나온다. 채취관이 아예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날씨가 따뜻해도 문제다. 섭씨 10℃가 넘으면 수액이 안 나온다. 당장 나무가 필요한 물이 급하기 때문이다. '나 먹을 물도 모자란데 밖으로 내보낼 수액이 어디 있어?' 뭐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구멍을 뻥뻥 내는 건 아니다. 이기연 작목반장은 "적어도 20년이 넘은 나무라야 구멍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하나만 허용된다. 구멍을 두 개 내려면 50년은 족히 넘어야 한다. 가슴 높이에서 잰 나무의 지름이 10㎝에 못 미칠 땐 수액 채취가 아예 금지돼 있다. 물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작업으로 빼내는 고로쇠액은 한정돼 있어요. 기껏해야 나무가 가진 전체 수액의 40분의 1 정도죠." 고로쇠액 채취는 산림청의 허가와 엄격한 통제하에 이뤄진다.

*** 자연산 이온 음료

허 이장은 "고로쇠액은 '천연 이온 음료'"라고 말한다. 독특한 향과 단맛, 게다가 물보다 흡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찜질방에다 고로쇠액을 통으로 갖다 놓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루에 세 말(18ℓ×3통)까지 마시는 경우도 봤어요."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말이다. 그래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몸안의 노폐물을 내보내는 효과가 크다고 한다. "예부터 성인병과 이뇨 작용, 변비,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등에 좋다고 했어요. 나무 뿌리가 자체적으로 '고성능 정수기' 역할을 하는 셈이죠. 특별한 음용법은 없어요. 그냥 갖다 놓고 수시로 마시면 돼요."

*** 오래 두고 마시려면

음식으로 따지면 고로쇠액은 '제철 음식'이다. 언제든 마실 수 있는 물이 아니다. 그래서 장기간 음용하고 싶다면 냉동실에 넣어 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된다. -2~1℃ 정도 되는 냉장고라면 괜찮다. 허 이장은 "수액 위에 얼음이 살짝 얼까말까 할 정도의 온도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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