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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달라진 것도 모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한 미국의 조치는 국제적인 민항기 안전보강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응징이다.
평양당국은 KAL기를 공중 폭파하여 1백15명의 인명을 앗음으로써 인류공존의 인도주의원칙과 국제질서로서의 국제법 원칙을 배반했다.
북한은 정권수립이래 반도 안에서는 물론 세계 도처에서 스스로 테러를 자행하거나 이를 배후에서 지원해왔다.
북한에 대한 응징은 인륜을 파괴한 비문명적 만행에 대한 도의적 책벌이다. 정치단체는 도덕적 원칙 위에 입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평양정권은 「혁명」이라는 구실로 인명살상을 서슴지 않아 「국제적인 패륜아」로 낙인찍혀왔다.
평양의 파괴대상은 적대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북한이나 그 우방의 많은 선량한 백성들을 테러전선에 투입하여 희생시켜왔다. 따지고 보면 김현희도 그런 피해자의 하나다.
북한응징은 국제법위반에 대한 처벌이기도 하다. 국가형태를 이루고 있는 집단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법을 준수하고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평양정권은 수시로 국제법을 유린함으로써 스스로 「국제적 무법자」로 전락됐다.
책벌이 응징으로 끝난다면 무의미하다. 그것은 죄과를 뉘우치고 개과천선을 가져올 때 비로소 가치가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응징도 그러한 변화가 수반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첫째로 북한이 패륜아나 무법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헤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과거의 불법과 만행이 헛된 과오였음을 뉘우치고 인륜과 법을 지켜 세계와 공존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다음은 테러를 주도해온 평양정권의 강경파가 제거되고 양심적인 온건파가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이 저질러온 모든 대한 도발이나 국제테러는 모두 모험주의적인 강경 그룹의 소행이었다. 일이 실패할 때마다 책임자들이 숙청되곤 했으나 그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더구나 김정일이 등장하여 최은희 납치, 아웅산 테러 등을 저지르고도 건재함으로써 강경파의 망동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을 필두로 한 좌익모험분자들은 정권내부에서 제거돼야 한다.
어느 집단이건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게 마련이다. 평양에도 혁명보다는 건설, 투쟁보다는 공존을 지향하는 경제·기술 관료파가 있다. 그들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그룹임에 틀림없다.
이젠 평양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세상이 몰라보게 바뀌고 있는데 북한은 언제까지 그 방법, 그 자리를 고수할 셈인가. 시대가 지나면 한 단계 성숙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평양이 국제적인 책임주체로 세계와 공존하려 할 때 국제사회와 민족공동체의 일부로 떳떳하고 안전하게 존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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