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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고사부터 수능까지…사진으로 보는 대입 60년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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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2월 본고사가 치러진 한 대학 시험장의 교문 앞. 고3 선배들을 응원하는 대자보 위에 한 학부모가 엿을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1967년 12월 본고사가 치러진 한 대학 시험장의 교문 앞. 고3 선배들을 응원하는 대자보 위에 한 학부모가 엿을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경북 포항 지진으로 연기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3일 치러진다. 전국의 고3 학생 및 졸업생이 치르는 대학 입학시험은 본고사, 예비고사, 학력고사 등의 이름으로 변해 왔지만 수험생과 학부모의 애절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입시 현장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엔 합격을 기원하며 시험장 교문에 엿을 붙였다. 이제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조용히 등교한다. 이전에 부모가 시험장까지 따라와 교문을 향해 절을 하기도 했다. 최근엔 문자와 동영상으로 응원한다. 지난 50여 년 변해온 대학 입시의 모습을 과거 사진을 통해 살펴봤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자료 도움=중앙일보 조사팀 명찬실 차장

"선배님, 시험 잘보세요." 지난 10일 오후 속초여자고등학교에서 1,2학년 후배들이 촛불을 들고서 선배들의 수능시험을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배님, 시험 잘보세요." 지난 10일 오후 속초여자고등학교에서 1,2학년 후배들이 촛불을 들고서 선배들의 수능시험을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➀1960년대 본고사 시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까지 대학 입학시험은 학교별로 치러졌다. 수험생 입장에선 기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 중압감이 심했다. 학교별로 시험 내용과 난이도도 달라 수험생의 부담이 컸다. 다만 현재와 같이 입시 제도가 복잡하지 않았다. 당시 수험생들은 지필고사 중심의 학교 공부에만 매진하면 됐다. 당시엔 중학교 입학시험도 따로 존재해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의 연속이었다. 1969년 서울을 시작으로 중학교 입학은 추첨제로 전환됐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0년대의 대학입시 풍경. 책상이 부족해 수험생들은 의자에 걸터앉아 무릎 위에 시험지를 놓고 문제를 풀었다. [국가기록원 제공=연합뉴스]

전쟁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0년대의 대학입시 풍경. 책상이 부족해 수험생들은 의자에 걸터앉아 무릎 위에 시험지를 놓고 문제를 풀었다. [국가기록원 제공=연합뉴스]

본고사가 열린 서울의 한 대학 시험장에서 학부모들이 교문에 엿을 붙이고 있다. 엿가락처럼 한번에 붙으라는 의미에서 엿과 떡 등을 교문에 붙이는 이들이 많았다. [중앙포토]

본고사가 열린 서울의 한 대학 시험장에서 학부모들이 교문에 엿을 붙이고 있다. 엿가락처럼 한번에 붙으라는 의미에서 엿과 떡 등을 교문에 붙이는 이들이 많았다. [중앙포토]

수험장에 들어간 자녀와 동생 등을 살펴보는 가족들. 담벼락에 올라 시험을 치르러 가는 수험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수험장에 들어간 자녀와 동생 등을 살펴보는 가족들. 담벼락에 올라 시험을 치르러 가는 수험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➁1970년대 예비고사 시대  

1969학년도 시험부터 대학입학예비고사가 도입됐다. 대학별 본고사 이전에 보는 시험이란 뜻에서 예비고사로 불렸다. 한국 입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일제고사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예비고사를 먼저 치르고 일정 점수 이상의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수험생만 본고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전국의 예비고사 시험장은 수험생을 응원하는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970년 예비고사 도입 3년째에 시험장을 시찰 중인 정부 고위 관료. [중앙포토]

1970년 예비고사 도입 3년째에 시험장을 시찰 중인 정부 고위 관료. [중앙포토]

1976년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르기 위해 경찰이 제공하는 차량을 타고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학생.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예비고사가 시작되면서 입시는 전 국민의 중요한 행사가 됐다. [중앙포토]

1976년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르기 위해 경찰이 제공하는 차량을 타고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학생.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예비고사가 시작되면서 입시는 전 국민의 중요한 행사가 됐다. [중앙포토]

1971년 예비고사를 치르고 있는 여학생들. [중앙포토]

1971년 예비고사를 치르고 있는 여학생들. [중앙포토]

1997년 예비고사를 치른 후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기 위해 모인 수험생들. 당시엔 예비고사에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본고사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졌다. [중앙포토]

1997년 예비고사를 치른 후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기 위해 모인 수험생들. 당시엔 예비고사에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본고사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졌다. [중앙포토]

➂1980년대 학력고사 시대  

신군부는 1980년 ‘7·30 교육개혁’조치를 단행해 과외를 금지하고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했다. 1982학년도에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합쳐진 학력고사가 시행됐다. 한 번의 학력고사로 대학 입시의 성패가 갈렸기 때문에 ‘한판 승부’로 불렸다. 1988학년도부터는 대학을 먼저 정하고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 도입됐다. 이때부터 원서 접수 막바지에 미달된 대학과 학과에 지원하는 ‘눈치작전’이 빚어졌다.

1985년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르는 수험생들. 신군부가 학력고사를 도입해 기존의 대학별 본고사와 예비고사가 폐지됐다. 사교육을 줄이고 수험생 부담을 경감하자는 취지였다. [중앙포토]

1985년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르는 수험생들. 신군부가 학력고사를 도입해 기존의 대학별 본고사와 예비고사가 폐지됐다. 사교육을 줄이고 수험생 부담을 경감하자는 취지였다. [중앙포토]

전국 수험생이 동시에 치르는 학력고사는 단 한번의 기회로 입시의 성패가 갈리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시험 당일 수험장과 그 주변, 그리고 시험 며칠 전부터 전국의 사찰과 교회 등에는 성공적인 입시를 기원하는 학부모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중앙포토]

전국 수험생이 동시에 치르는 학력고사는 단 한번의 기회로 입시의 성패가 갈리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시험 당일 수험장과 그 주변, 그리고 시험 며칠 전부터 전국의 사찰과 교회 등에는 성공적인 입시를 기원하는 학부모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중앙포토]

1990년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사건의 여파로 음악 실기고사장에는 2m높이의 칸막이가 설치됐다. 1991년 1월 후기 입시의 상명여대 음악 실기고사장. [중앙포토]

1990년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사건의 여파로 음악 실기고사장에는 2m높이의 칸막이가 설치됐다. 1991년 1월 후기 입시의 상명여대 음악 실기고사장. [중앙포토]

1991학년도 전기대 입학원서 접수를 앞둔 서점의 모습. 전국 대학의 배치기준표 등 각종 입시정보자료집이 불티나게 팔렸다. 학력고사 결과에 따라 전국 대학과 학과를 줄세운 배치기준표는 수험생들에게 절대적인 입시 자료였다. [중앙포토]

1991학년도 전기대 입학원서 접수를 앞둔 서점의 모습. 전국 대학의 배치기준표 등 각종 입시정보자료집이 불티나게 팔렸다. 학력고사 결과에 따라 전국 대학과 학과를 줄세운 배치기준표는 수험생들에게 절대적인 입시 자료였다. [중앙포토]

➃1994학년도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대

이전까지의 대학입시 시험은 과목별 지식을 주로 측정했다. 1994학년도 대입에선 새로운 입시 방식으로 도입됐다. 지금의 수능이다. 주입식 암기 교육을 벗어나기 위해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목표를 뒀다. 첫 수능은 한 해 두 차례 치러졌으나 난이도 조절 실패 등의 문제로 이듬해부터 한 해 한 차례로 줄었다. 그러나 ‘불수능’과 ‘물수능’을 반복하는 들쭉날쭉한 난이도는 10여 년간 큰 문제를 낳았다. 전년보다 갑자기 어려워진 2002학년도 수능에선 시험 도중 수험생이 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1994학년도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 1차 시험을 하루 앞둔 1993년 8월 19일 전국에서 일제히 수험생 예비소집이 실시됐다. 당시 서울 경복고 3학년생들이 담임교사로부터 수험표를 받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94학년도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 1차 시험을 하루 앞둔 1993년 8월 19일 전국에서 일제히 수험생 예비소집이 실시됐다. 당시 서울 경복고 3학년생들이 담임교사로부터 수험표를 받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수능시험 당일엔 이른 아침부터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차와 커피 등을 제공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1995학년도 두 번째 수능부터는 시험 횟수가 한 해 2회에서 한 해 1회로 줄었다. [중앙포토]

수능시험 당일엔 이른 아침부터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차와 커피 등을 제공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1995학년도 두 번째 수능부터는 시험 횟수가 한 해 2회에서 한 해 1회로 줄었다. [중앙포토]

➄2010년 이후 만점자 ‘1%’ 방침과 입학사정관제

2012학년도 수능부터는 만점자 비율을 1%로 맞추겠다고 하면서 쉬운 수능 기조가 지속됐다. 수시모집 확대와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 도입으로 수능의 비중은 축소됐다. 최근에는 일부 과목을 시작으로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자격고사’로 변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수능의 절대적 영향력이 줄긴 했지만, 현재까지는 여전히 대학 입시에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마음은 간절하다.

2009년 9월 수능을 두달 앞둔 고3 선배들에게 부산 예문여고 1학년생들이 '고득점 기원' 등 문구가 쓰인 370개의 작은 박을 만들어 교정에 달고 있다. [중앙포토]

2009년 9월 수능을 두달 앞둔 고3 선배들에게 부산 예문여고 1학년생들이 '고득점 기원' 등 문구가 쓰인 370개의 작은 박을 만들어 교정에 달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11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고득점을 기원하며 학교 앞 ‘소망나무’에 소원을 적어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11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고득점을 기원하며 학교 앞 ‘소망나무’에 소원을 적어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수능 대박' 후배들의 율동. 지난 7일 부산 주례여고 1학년생들이 선배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플래시몹을 펼쳤다. [연합뉴스]

'수능 대박' 후배들의 율동. 지난 7일 부산 주례여고 1학년생들이 선배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플래시몹을 펼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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