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지진으로 연기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3일 치러진다. 전국의 고3 학생 및 졸업생이 치르는 대학 입학시험은 본고사, 예비고사, 학력고사 등의 이름으로 변해 왔지만 수험생과 학부모의 애절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입시 현장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엔 합격을 기원하며 시험장 교문에 엿을 붙였다. 이제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조용히 등교한다. 이전에 부모가 시험장까지 따라와 교문을 향해 절을 하기도 했다. 최근엔 문자와 동영상으로 응원한다. 지난 50여 년 변해온 대학 입시의 모습을 과거 사진을 통해 살펴봤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자료 도움=중앙일보 조사팀 명찬실 차장
➀1960년대 본고사 시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까지 대학 입학시험은 학교별로 치러졌다. 수험생 입장에선 기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 중압감이 심했다. 학교별로 시험 내용과 난이도도 달라 수험생의 부담이 컸다. 다만 현재와 같이 입시 제도가 복잡하지 않았다. 당시 수험생들은 지필고사 중심의 학교 공부에만 매진하면 됐다. 당시엔 중학교 입학시험도 따로 존재해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의 연속이었다. 1969년 서울을 시작으로 중학교 입학은 추첨제로 전환됐다.
➁1970년대 예비고사 시대
1969학년도 시험부터 대학입학예비고사가 도입됐다. 대학별 본고사 이전에 보는 시험이란 뜻에서 예비고사로 불렸다. 한국 입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일제고사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예비고사를 먼저 치르고 일정 점수 이상의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수험생만 본고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전국의 예비고사 시험장은 수험생을 응원하는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➂1980년대 학력고사 시대
신군부는 1980년 ‘7·30 교육개혁’조치를 단행해 과외를 금지하고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했다. 1982학년도에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합쳐진 학력고사가 시행됐다. 한 번의 학력고사로 대학 입시의 성패가 갈렸기 때문에 ‘한판 승부’로 불렸다. 1988학년도부터는 대학을 먼저 정하고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 도입됐다. 이때부터 원서 접수 막바지에 미달된 대학과 학과에 지원하는 ‘눈치작전’이 빚어졌다.
➃1994학년도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대
이전까지의 대학입시 시험은 과목별 지식을 주로 측정했다. 1994학년도 대입에선 새로운 입시 방식으로 도입됐다. 지금의 수능이다. 주입식 암기 교육을 벗어나기 위해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목표를 뒀다. 첫 수능은 한 해 두 차례 치러졌으나 난이도 조절 실패 등의 문제로 이듬해부터 한 해 한 차례로 줄었다. 그러나 ‘불수능’과 ‘물수능’을 반복하는 들쭉날쭉한 난이도는 10여 년간 큰 문제를 낳았다. 전년보다 갑자기 어려워진 2002학년도 수능에선 시험 도중 수험생이 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➄2010년 이후 만점자 ‘1%’ 방침과 입학사정관제
2012학년도 수능부터는 만점자 비율을 1%로 맞추겠다고 하면서 쉬운 수능 기조가 지속됐다. 수시모집 확대와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 도입으로 수능의 비중은 축소됐다. 최근에는 일부 과목을 시작으로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자격고사’로 변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수능의 절대적 영향력이 줄긴 했지만, 현재까지는 여전히 대학 입시에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마음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