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 시진핑 특사 '70자 홀대'…방북 3박4일 내내 냉랭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언론 보도로 본 쑹타오 특사 방북 3박 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 대한 북한의 시선은 특사의 평양 도착 전부터 출발 때까지 시종일관 싸늘했다.

북, 특사 수용 발표부터 떠날 때까지 냉랭, 김정은 면담 불발 #"최용해, 이수용 부위원장 면담에서 특사 방북 목적 마무리" #특사단 귀국 내용 보도는 2015년 류윈산 출발 때 3분의 1수준 #대신 북중 전통적 우호관계 참관토록해 간접적인 불만 표시 #신발공장 보여주며 대북 제재에도 공장돌아간다 메시지도

 양측이 특사 파견에 동의하고 공식 발표한 지난 15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습근평(시진핑의 북한식 표기)동지의 특사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련락부장 송도(쑹타오)동지가 곧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된다”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또 특사가 20일 평양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지 몇시 간 뒤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습근평 동지의 특사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련락부장 송도동지와 일행이 20일 귀국하였다”며 한 줄짜리 기사를 내보냈다. 각각 70자, 68자(띄어쓰기 포함)짜리 단신 중의 단신이었다.

 2015년 10월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이끌었던 대표단 방문 때(224자)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당시엔 김기남 비서와 최휘 당 제1부부장이 공항에서 배웅했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냉랭해진 북중관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전보다 특사의 격이 낮고, 당대회 결과 설명을 위한 특사 파견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데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압박성 대표단이라는 점을 인식한 듯 하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015년 10월 북한을 찾은 류윈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면담하고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015년 10월 북한을 찾은 류윈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면담하고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지난 17일부터 3박 4일간 평양을 방문했던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오른쪽 끝)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20일 베이징 서우도 공항에 도착했다. 쑹 부장 옆은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 [사진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지난 17일부터 3박 4일간 평양을 방문했던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오른쪽 끝)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20일 베이징 서우도 공항에 도착했다. 쑹 부장 옆은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 [사진 연합뉴스]

이런 북한의 태도는 특사 방북 기간 내내 이어졌다. 당장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임에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북한을 찾은 특사단을 일일이 만나지는 않았다. 몽골, 니카라과 특사단 방북에는 헌법상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11월 리젠궈(李建國) 정치국 위원이 18차 중국 공산당 대회 설명차 방북했을 때나, 2015년 9월 쿠바 대표단은 본인이 만나 직접 챙겼다. 중국이나 쿠바 등 북한의 우방국가, 특히 중국에 대해선 각별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이번에는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다른 당국자는 “이번 중국의 특사 파견은 19차 당대회 결과 설명이외에 미중 정상회담(지난 9일) 결과에 따른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목적도 있었다”며 “중국은 김정은에게 직접 시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은 끝내 일정표에 면담을 넣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 당대회로 더욱 강력한 권력을 다진 시진핑 특사를 김정은이 거부하겠냐는 관측이 있었다”며 “북한 지도자들이 불쑥 대표단 숙소로 찾아 오거나 갑자기 대표단을 접견하겠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어 특사가 도착할 때까지 예의주시했다”고 덧붙였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특사가 17일 최용해 당 부위원장과 18일 이수용 당 부위원장을 만난 결과가 김정은에게 보고됐고, 특사의 방북 보따리가 마음에 들지 않자 나서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언론들은 18일 “쑹 특사가 최용해 부위원장에게 시 주석의 선물을 전달하고, 당대회 진행정형(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수용 부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선 “조선(한)반도와 지역정세, 쌍무관계를 비롯한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다. 이를 고려하면 북한은 특사 파견의 목적인 중국 당대회 설명은 최용해가, 북한 핵문제 등 현안에 대해선 이수용이 특사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이날 “(중국의 역할에)한계가 있다”고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북한은 특사단 일행을 김일성ㆍ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이나 조(북)중 우의탑, 만경대혁명학원으로 안내했다. 김일성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양국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김정은은 쑹 특사를 만나지 않은 채 불편한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특사 파견을 계기로 오히려 북중간 골이 깊어졌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 교수는 “통상 김정은이 특사를 만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북한이 뭔가를 더 얻어내려 하며 시간을 끌자 중국이 예정된 일정만 소화하고 철수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