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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눈표범 소녀, 아프리카 스키 희망의 활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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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지난 2월 알파인 스키 세계선수권 회전 종목에서 힘차게 슬로프를 내려오는 시마더. [사진 엔트리 컨설팅그룹]

지난 2월 알파인 스키 세계선수권 회전 종목에서 힘차게 슬로프를 내려오는 시마더. [사진 엔트리 컨설팅그룹]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

아프리카의 케냐는 세계적인 마라톤 강국이다. 역대 올림픽 마라톤에서 12개의 메달을 따냈다. 남자 마라톤 세계기록도 케냐 선수(데니스 키메토·2시간2분57초)가 갖고 있다. 그러나 케냐는 겨울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다. 케냐에선 눈과 얼음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겨울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라고 해봐야 1998년 대회부터 3회 연속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출전했던 필립 보이트가 유일하다.

올림픽 출전 꿈 이룬 19세 시마더 #3세 때 어머니 따라 오스트리아로 #새아버지가 스키 전문학교 보내줘 #뛰어난 재능으로 어릴 때부터 두각 #올해 월드컵·세계선수권 잇단 출전 #“국제대회 시상대에 서는 게 목표 #아프리카 스키 가능성 보여줄 것”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또 한 명의 케냐 선수를 만날 수 있다. 사브리나 완지쿠 시마더. 열아홉살의 알파인 스키 선수다. 케냐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스키 선수의 꿈을 키웠다. 내년 평창 올림픽 때는 케냐의 상징인 표범 무늬 경기복을 입고, 길이 2㎞ 안팎의 슬로프를 내려올 예정이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내년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각오를 들어봤다. 시마더는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평창 올림픽에서 질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케냐에서 태어난 시마더는 눈 덕분에 인생항로가 바뀐 경우다. 그는 지난 1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과 2월 스위스에서 열린 알파인 스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수퍼대회전 종목에서 39위에 올랐다. ‘스키 여제’ 린지 본(미국)을 포함해 7명이 실격 당했던 이 대회에서 그는 당당히 완주에 성공했다. 내년 2월 평창 올림픽에선 수퍼대회전·회전·대회전 등에 출전할 계획이다.

사브리나 시마더 [사진 Entri 컨설팅그룹]

사브리나 시마더 [사진 Entri 컨설팅그룹]

1998년 케냐의 해안 도시 킬리피에서 태어난 시마더는 3세 때 어머니와 함께 오스트리아로 건너갔다.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버지가 살던 오스트리아는 그에겐 생소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무엇보다 케냐에선 본 적도 없는 눈이 많은 동네였다. 그는 “스키를 처음 탔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날씨가 너무 추웠고, 장갑을 잃어버려서 펑펑 울었다”고 밝혔다. 새아버지 조셉의 권유로 스키를 시작하면서 시마더에겐 스키 선수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새아버지는 마라톤·자전거 등 운동에 일찍이 재능을 보인 시마더를 스키 전문학교에 보내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했다.

시마더는 남다른 운동 신경으로 어릴 때부터 스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4세 때인 2012년엔 오스트리아 지역 주 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2015년엔 성인 대회인 독일스키선수권에도 출전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엔 릴레함메르 유스올림픽에 케냐 대표로 처음 참가했다. 올해 초엔 꿈의 무대였던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면서 유망주로 떠올랐다.

사브리나 시마더. [사진 Entri 컨설팅그룹]

사브리나 시마더. [사진 Entri 컨설팅그룹]

운동을 포기하려고 했던 고비도 있었다. 그의 곁에서 응원하던 새아버지가 2012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슬럼프에 빠졌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어린 소녀를 힘들게 했다. 그나마 어머니의 응원 덕분에 시마더는 간신히 일어섰다.

시마더는 현재 케냐 국기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만 케냐 스키협회의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 시마더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아버지의 친구, 크리스티안 라이프(오스트리아) 코치를 비롯한 3명의 ‘미니 팀’이 그를 돕는 게 전부다.

그래도 시마더는 ‘아프리카 스키선수는 안 된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어린 나이에 스키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입상하면서 세계 스키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엔 ‘유럽 아프리카 여성 재단’이 선정한 ‘올해의 아프리카 여성 선수’로도 선정됐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스포츠 방송사와 스키 리조트 업체가 그를 후원하고 있다. 마이클 오유기 주오스트리아 케냐 대사는 “시마더야말로 케냐를 알리는 진정한 대사”라고 밝혔다. 시마더는 스와힐리어와 키쿠유어 등 두가지 케냐 현지 언어를 비롯해 영어·독일어·이탈리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한다.

검은색 피부의 시마더는 슬로프 위에서 항상 표범 무늬 경기복을 입는다. 시마더는 “아프리카의 눈표범을 형상화한 경기복이다. 눈표범은 항상 집중해서 사냥에 성공하는데 나도 스키에서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며 “마라톤이 케냐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지만 케냐 선수가 스키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사브리나 시마더. [사진 Entri 컨설팅그룹]

사브리나 시마더. [사진 Entri 컨설팅그룹]

물론 내년 2월 평창 올림픽에서 시마더가 메달을 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시마더는 국제 대회에서 케냐 국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서는 꿈을 꾼다. 메달을 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고 아프리카 스키 선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시마더는 “검은 피부색만 주목하지 말고, 내 기량을 지켜봐달라. 아프리카의 표범처럼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사브리나 시마더는 …

●생년월일 : 1998년 4월 13일(케냐 킬리피 출생)
●사는 곳 : 오스트리아 중부 하우스 임 엔스탈
●키 : 1m60㎝ ●취미 : 산책·수영·음악듣기
●롤모델 : 린지 본(미국)
●주요 경력 : 2016 2월 릴레함메르 유스올림픽 알파인
복합 20위, 수퍼대회전 23위, 2017 1월 FIS 월드컵 데뷔
2017 2월 알파인 스키 세계선수권 수퍼대회전 39위
●목표 :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 케냐 국가를 울리는 것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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