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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굴 알고 지냅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세닢 주고 집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는 속담을 가진 우리는 요즘 과연 어떤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있는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내 가족」만 열심히 챙기며 울타리를 높이 쌓을수록 점점 멀어지고 험악해지는 이웃들이 서로 반갑고 미더운「이웃 사촌」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을까. 따사로운 인정 속에 보다 많은 것들을 나누는 이웃들을 소개하는「이웃과 함께 하는 삶」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난11일 상오 서울 성북구 월곡동「생명의 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이색적인 신년하례 회가 열렸다.
이 지역의 노인회장·교회목사와 장로·동장·파출소장·식당주인·구청장·아동복지기관 직원·주부 등 동네유지와 기관장 및 일반주민 50여명이 속속 하례식장으로 들어서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튼튼한 아기 엄마가 되세요』『좋은 사위를 맞으신 다죠』 하며 서로 덕담과 새해인사를 주고받는 88동네 신년하례 회.
처음엔 낯선 사람들 틈에 끼여 다소 겸연쩍고 서먹서먹한 표정을 짓다가도 흥겨운 음악 속에 차와 떡·과일 등을 서로 권하는 사이 저절로 말문이 트이는 듯, 차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스스럼없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동네잔치 땐 참 수고 많으셨어요』『노인들의 빈집 보아주기며 환자 돌보기 부업이 갈수록 인기라지요?』지난 한 해 동안「생명의 전화」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업들에 대해 서로 치하하고 각자의 새로운 의견을 내놓는 등「동네살림」에 대한 이야기가 만발.「생명의 전화」조향녹 이사장은『우선 이웃끼리 서로 알고 지내야 서로 돕든 인정을 나누든 할게 아닙니까』라며 언제 어디서 만나든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 이곳을「인정1번지」로 만들자고 말했다. 한밤중에 병이 났을 때 바로 옆집에 의사가 사는 것을 몰라 밤새 고생하거나 먼데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식의「이웃 모르는 댓가」를 더 이상 치르지 말자는 것.
따라서 앞으로는 주민들의 인적구성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한 지역조사를 실시해 지역공동체의 기능을 최대로 활성화시키겠다는「도시재구성」의 포부를 밝혔다.
이어 성북구 이원종 구청장이『여러 가지 이유로「하월곡동」이라는 종전의 동네이름을 언짢아하던 주민여러분들의 숙원이 마침내 이루어져 올해 1월1일부터는 여러분도 행정적으로「월곡동」주민이 되었읍니다』라고 전하자 모두들 좋아 라고 박수갈채.
이 구청장은 또『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는 아랑곳없이 출신지에만 연연하는 부모들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 자녀들까지도 서울은 영원한 타향이고 이웃도 그저 낯선 타인으로만 여기게 만들기 십상임을 생각해봐야 합니다』라며『이웃끼리 서로 가까워지려는 이 지역 주민들의 노력이 현재 사는 곳을 고향 못지 않게 아끼는 애향운동으로 널리 확산되길 바랍니다』고 덧붙였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집이나 일터의 전화번호도 주고받은 뒤 신년하례 식장을 나서며 주부 조길자씨(40)「생명의 전화」가 재작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는 동네 송년잔치며, 이런 신년하례 모임을 통해 서로 사귀고 돕는 이웃이 많아질수록 이웃의 소중함과 함께 지금까지 이웃들과 얼마나 높이 담쌓고 살아왔는지를 새록새록 실감하게 됩니다』고 말했다.
「생명의 전화」복지관을 중심으로 이미 저소득 가정이나 유휴인력을 위한 간병인·분갈이· 파출부·빈집 보아주기·장갑 꿰매기 등의 부업알선과 노인·주부·청소년대상의 각종 강좌와 실습, 상담, 주민 도서실운영, 안 쓰는 물건 나눠 쓰기 등의 사업이 벌어지고 있으나 지역주민들 스스로 서로 도울 여지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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