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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긴급대피 학교 중 34.1%만 내진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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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규모의 지진으로 외벽에 금이 가 있는 경북 포항의 흥해초등학교. 우상조 기자

5.4 규모의 지진으로 외벽에 금이 가 있는 경북 포항의 흥해초등학교. 우상조 기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모(41·서울 노원구) 씨는 지난 15일 포항 지진으로 포항 지역 학교 일부가 피해를 봤다는 소식에 걱정이 생겼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내진 설계가 돼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학교 측에 물어보니 "확인해 봐야 안다”는 답변뿐이었다. 김씨는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아이 학교의 내진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개별 학교 내진 여부 알기 힘들어 #교육부, 내년 말쯤 DB 공개 예정 #벽돌식 건물은 실태 파악조차 안돼 #서울교육청 "내진 보강 2030년 완료"

내진 여부 확인하려면 전화 문의해야
포항 지진 영향으로 학교 건물의 내진설계 여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학생·학부모가 자기 학교의 내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당 교육청에 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2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내진 대상 학교 건물(3609동) 중 내진설계가 돼 있는 곳은 26.5%인 955동뿐이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 학교의 내진설계 여부를 따로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자기 건물의 내진 여부를 모르는 학교도 많다. 서울 강북의 한 고교는 1990년대에 지금 위치로 옮겨와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 학교 교감 A씨는 “이전 당시에는 6층 이상에만 내진 설계가 적용됐다. 우리 학교는 해당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른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 초등학교 교감도 “그동안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라고 생각해 대부분 학교가 내진 설계에 신경을 안 쓰고 지냈다. 나는 물론 교사들도 우리 학교 내진 여부를 잘 모른다”고 털어놨다.

내진설계 기준 변천사

내진설계 기준 변천사

재난대피시설도 내진설계 안 돼

더욱 심각한 점은 정부가 재난 발생 시 긴급대피시설로 지정한 학교의 상당수에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구의 B초등학교는 재난 발생 시 주민들이 몸을 피하는 긴급대피시설이다. 인근 주민들은 지진이 발생하면 이 학교 운동장과 공터 등 실외 장소로 대피하게 돼 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엔 학교 건물을 이재민 등을 위한 대피시설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학교는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다.

B초교처럼 서울지역에서 긴급대피시설로 지정된 학교 건물(738동) 중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은 곳은 486곳(65.9%)에 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가 지역의 중심에 있다 보니 내진설계가 안 돼 있어도 대피시설로 지정해 놓은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교육부는 내년 말까지 전국 학교의 내진 여부 및 보강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교육부 윤석훈 교육시설과장은 “내년까지 모든 국민이 학교별 내진 여부를 알 수 있도록 DB를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국 초·중·고등학교 내진 여부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지 않아 개별 교육청 차원에서 공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벽돌 건물은 더욱 위험
건물이 오래된 학교일수록 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 40~50년 전에 벽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지은 이른바 ‘조적조(組積造)’ 건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건물에 대한 실태 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적조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에 비해 지진에 더 취약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조적조 건물은 내진을 보강하기 매우 어렵다. 이런 학교가 몇 군데인지 파악은 아직 안 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C고등학교는 건축된 지 60년가량 됐다. 원래는 맨 꼭대기가 4층까지 있었는데 지난해에 4층 부분을 철거했다. 현행 안전 규정에 맞지 않아서다. 이 학교 교장은 “현행법상 조적조 건물은 4층을 못 짓게 돼 있다. 우리 학교를 지을 땐 그런 기준이 없었다. 지난해 4층 부분을 철거했으나 지진엔 매우 약하기 때문에 아예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여고 방문한 이낙연 총리. 벽돌로 이뤄진 담장이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포항여고 방문한 이낙연 총리. 벽돌로 이뤄진 담장이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2034년까지 전체 학교 내진 완료

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지만, 전국 모든 학교가 내진 성능을 확보하려면 2034년쯤 돼야 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육부는 올해 학교 내진 보강 예산으로 2000억원을 책정했다. 2034년까지 총 5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산을 늘린다고 완료 시점이 앞당겨지는 것도 아니다. 내진 보강을 할 수 있는 인력과 공사 기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윤석훈 과장은 “기존 건물에 내진을 보강하는 것은 신축보다 더욱 어렵다. 이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는 건설 업체와 인력이 한정돼 있다. 게다가 학교 특성상 방학 때만 가능해 작업 기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시설이 노후해 내진에 취약한 학교, 지진 시 대피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특수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이 오랜 시간 상주하는 기숙사 건물에 우선 내진 보강 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내진보강 앞당겨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내진보강 작업을 4년 앞당겨 2030년까지 마치겠다고 21일 발표했다. 시교육청은 매해 51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90여 학교 건축물을 보강해나갈 계획이다.

학교 석면 제거를 위한 예산도 늘어난다. 원래는 2027년까지 매년 3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370억 원으로 확대하고 공사 전·후 유해물질 제거를 위한 청소도 할 예정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 차원의 예산 마련을 건의했다. 조 교육감은 "교육청 홀로 예산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라며 "학교 내진 보강과 석면 제거 등을 비롯한 학교시설 개선을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석만·이태윤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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