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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5년째 1%대 … “Fed의장 바뀔 때 2% 목표치 낮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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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목표로 삼고 있는 물가상승률이다. 이 목표치는 2012년 1월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처음으로 제시했다. 지금은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한국·일본 등 주요 국가 중앙은행도 2%를 목표로 삼고 있다.

파월 의장 취임 앞두고 바뀔지 관심 #버냉키 첫 제시할 때와 상황 달라져 #“저물가·저금리 계속 땐 쓸 카드 없어 #경제가 순항할 때 정책 다듬어야” #지역 연준 총재들 수정 주장 잇따라

버냉키 의장 이전까지만 해도 Fed는 명시적인 숫자로 물가상승률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Fed 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물가상승률 기대치를 정기적으로 공개했을 뿐이다. 하나의 숫자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예컨대 1.7~2.0%처럼 폭넓은 범위를 제안하는 방식이었다.

공교롭게도 Fed가 물가상승률 목표를 정해 공개한 이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한 번도 2%를 넘은 적이 없다. Fed가 선호하는 물가 측정 지표인 전년동기 대비 개인소비지출(Personal Consumption Expenditure·PCE) 증가율은 2012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2.11%를 기록했다. 이후 지난 9월 말(1.32%)까지 5년 넘게 줄곧 2%를 밑돌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에 Fed 내에서는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이젠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때마침 내년 2월 재닛 옐런 의장이 물러나고 제롬 파월 신임 의장이 들어오는 리더십 교체기인데다, 이같은 정책 변화는 경제가 지금처럼 순항할 때 꾀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제는 2014년 2.6%, 2015년 2.9%에 이어 지난해에 1.5% 성장했다. 베트남전쟁이 있던 1960년대(106개월), 정보기술(IT) 혁신을 경험한 90년대(120개월)에 이어 미국 역사상 세번째로 긴 경기 확장 국면이다. 하지만 물가와 금리는 바닥을 헤매고 있어 “인플레이션이 오르지 않는 미스터리”(옐런 의장)가 장기화되고 있다.

2% 목표 수정 논의를 이끄는 이들은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연방준비은행 총재,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준비은행 총재,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연설 및 강연을 통해 “인플레이션 2% 목표를 재고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 근거는 2012년 Fed가 인플레이션 2% 목표를 설정한 이후 한 번도 이를 넘어선 적이 없다는 현실론이다. 인플레이션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이에 따라 금리 인상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미래에 경기 침체가 닥치면 사용할 수 있는 정책 도구가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Fed가 2% 목표를 세웠을 당시와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도 이유다. 블룸버그는 “당시는 금리를 2% 또는 그 이상으로 올려도 성장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이 2%였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펀더멘털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Fed는 물가 안정과 지속가능한 최대 고용률 달성을 목표로 한다. 블룸버그는 “당시 2%는 근로자의 임금 인상이 가능하고, 디플레이션이 올 경우에 대비해 Fed에게 완충장치를 줄 수 있는 적정선이었다”고 전했다.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해 중국과 신흥국이 싼값에 상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조합이 약화되면서 근로자의 협상력도 줄었고, 이로 인해 임금이 오르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미국의 셰일석유 산업 확대로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것도 한몫한다. 기술 기반의 인터넷 기업이 탄생하면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아마존과 우버의 예에서 알 수 있다.

경제가 순항할 때 미래의 통화정책을 다듬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은 실업률이 낮고(4.1%) 경제 성장률이 견조하며 인플레이션은 목표치를 밑돌지만 몇달 안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존 윌리엄스 총재는 “다음 침체기가 오기 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틀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찰스 에번스 총재도 “다음에 제로 금리 정책을 써야 할 때를 대비해 새로운 통화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십 교체기여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좋은 시점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스틱 총재는 “리더십 교체기여서 새로운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좋은 시점이다.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 정책을 새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 9월 기고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낮은 이유가 임시적이냐 영구적이냐에 따라 물가 목표치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브랜드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물가상승률 2% 목표가 적절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5년마다 정책을 재점검하는데,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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