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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김삿갓이 방랑 멈춘 절경…적벽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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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김삿갓이 방랑 멈춘 절경…적벽(赤壁)을 가다

전남 화순, 붉은 절벽이 천혜 경관 연출 #김삿갓이 방랑 멈추고 생을 마감한 곳 #中 양쯔강의 적벽과 닮아 붙여진 이름 #노루목 등 절벽 4개, 동양화 병풍 방불 #상수원 철통 보호가 '조선 10경' 지켜 #'광주 식수원' 1985년부터 출입 차단

조선시대 10경 중 하나인 전남 화순의 적벽.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으로 지정된 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돼 천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조선시대 10경 중 하나인 전남 화순의 적벽.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으로 지정된 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돼 천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의 보산적벽 입구에서 바라본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 일대 풍광.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의 보산적벽 입구에서 바라본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 일대 풍광.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화순에는 푸른 호수 위에 병풍처럼 솟아오른 거대한 주상절리 절벽이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1807~63)이 세 번을 찾았다는 적벽(赤壁)이다.
조선시대 10대 절경으로 꼽혔던 이곳은 강원도 영월 출신인 김삿갓이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적벽은 광주광역시의 식수원인 화순군 동복천 일대에 붉은색 수직 절벽이 천혜의 비경을 이룬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순 적벽. 보산적벽 뒤로 노루목적벽이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순 적벽. 보산적벽 뒤로 노루목적벽이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일명 ‘노루목적벽’으로 불리는 장항적벽을 중심으로 보산적벽·물염적벽·창랑적벽 등 4개의 절벽이 약 7㎞ 구간에 걸쳐 형성돼 있다. 파란 하늘과 맑은 강물, 기암괴석과 수풀이 어우러진 풍광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적벽이라는 이름은 1519년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중국 양쯔강(楊子江)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산두는 기묘사화 때 화순으로 유배돼 적벽을 본 후 천하절경이라며 감탄했다.

전남 화순의 적벽 4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 웅장한 붉은색 수직 적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화순의 적벽 4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 웅장한 붉은색 수직 적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중국의 적벽은 『삼국지』에서 오나라 손권과 촉나라 유비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벌어진 곳이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가 귀양을 가서 지었다는 적벽부(赤壁賦)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적벽은 천연기념물 465호인 무등산의 입석대, 서석대처럼 주상절리 현상으로 바위가 응결되어 만들어진 지형이다. 사암·이암 등 다양한 퇴적암이 차례로 쌓여 줄무늬를 만든 게 특징이다.

전남 화순의 적벽 4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 웅장한 붉은색 수직 적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화순의 적벽 4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 웅장한 붉은색 수직 적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중 노루목적벽은 수려한 절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비경을 갖추고 있다. 흔히들 ‘화순적벽’이라 부르는 이곳은 원래 95m 높이의 절벽 중 60m가량이 물 위에 솟아 있다.
절벽 바로 앞에 있는 보산적벽(寶山赤壁)과 더불어 웅장한 비경을 연출함으로써 동복댐 건설 전까지 사시사철 탐방객이 찾던 명승지다.가을 단풍철에는 붉은 절벽과 다양한 단풍나무들이 어울려 환상적인 풍광을 볼 수 있다.

노루목적벽과 마주한 보산적벽 위의 망향정(望鄕亭). 1985년 완공된 동복댐 건설 과정에서 물에 잠긴 15개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정자다. 프리랜서 장정필

노루목적벽과 마주한 보산적벽 위의 망향정(望鄕亭). 1985년 완공된 동복댐 건설 과정에서 물에 잠긴 15개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정자다. 프리랜서 장정필

노루목적벽과 마주한 보산적벽 위에는 망향정(望鄕亭)과 망향탑(望鄕塔) 등이 있다. 1985년 완공된 동복댐 건설 과정에서 물에 잠긴 15개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상징물이다.

보산적벽 위에 오르면 망향정 뒤편에 있는 노루목적벽과 옹성산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 형식을 갖춘 망미정(望美亭)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 등도 남아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보산적벽 위 천제단(天祭壇)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보산적벽 위 천제단(天祭壇)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물염적벽(勿染赤壁)은 김삿갓이 수시로 올라 시를 쓰던 곳으로 그가 최후를 마친 곳이기도 하다. 물염정(勿染亭)과 김삿갓의 동상, 7폭의 시비(詩碑) 등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창랑적벽(滄浪赤壁)은 높이 40m에 길이가 100m가량 이어진 웅장한 절벽군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뱃놀이 명소로 유명했던 적벽 일대는 근대 이후로는 여름철 피서지나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널리 이용됐다.

보산적벽 아래에 있는 망미정(望美亭).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 형식을 갖춘 건축물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보산적벽 아래에 있는 망미정(望美亭).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 형식을 갖춘 건축물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無等山 高松下在) /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는 물이로다(赤壁江 深沙上流).
-김삿갓

문화재청은 지난 2월 옛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적벽을 국가 지정 명승 112호로 지정했다. 이중 김삿갓은 적벽 인근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후 후손들이 강원도 영월로 이장하기 전까지 화순에 묻힐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보산적벽 아래에 있는 망미정(望美亭).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 형식을 갖춘 건축물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보산적벽 아래에 있는 망미정(望美亭).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 형식을 갖춘 건축물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다산 정약용(1762~1836)도 16세 때 화순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 정재원(1730~92)을 따라 화순에 온 뒤 ‘적벽강 정자에서 노닐며’ 같은 시를 남겼다.

구름 시내 여러 번 꺾어진 끝에(雲溪屢屈折) / 아련히 외로운 정자 눈에 들어와(窈窕見孤亭) / 붉은 돌 노을 기운 어리어 있고(赤石流霞氣) / 푸른 숲엔 새들이 날아 내리네(靑村落鳥翎)
-다산 정약용

보산적벽 입구에서 바라본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 일대 풍광. 프리랜서 장정필

보산적벽 입구에서 바라본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 일대 풍광.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 적벽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천혜의 비경을 잘 지켜온 곳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30여 년간 사람의 발길을 철저히 통제한 덕분에 조선시대 10대 경관으로 꼽혔던 절경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1973년 광주광역시의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적벽 일대는 1985년부터 민간의 출입을 엄격히 차단했다. 현재도 동복댐 주변에는 사람의 왕래를 막기 위한 철조망이 빼곡하게 설치돼 있다.

화순 동복댐 전체를 철조망으로 둘러싼 화순 적벽 일대 모습. 광주광역시의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돼 천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 동복댐 전체를 철조망으로 둘러싼 화순 적벽 일대 모습. 광주광역시의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돼 천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시민들의 식수원인 이곳에는 동복댐에서 끌어올린 물을 광주까지 공급하는 ‘동복 도수(導水)터널’이 설치돼 있다. 화순 안양산과 무등산 자락 등을 관통하는 12㎞ 구간의 터널이다.

높이 47m의 취수탑(取水塔)은 동복호의 저수율이나 수질 상태에 따라 취수구(取水口)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엄격하게 수질 관리가 이뤄진 동복호의 물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층의 물을 찾아 퍼 올리는 시설이다.

동복댐의 물을 끌어올려 광주광역시까지 보내는 취수탑. 멀리 뒤편으로 노루목적벽의 정상부인 옹성산이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동복댐의 물을 끌어올려 광주광역시까지 보내는 취수탑. 멀리 뒤편으로 노루목적벽의 정상부인 옹성산이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적벽의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2014년 10월 23일부터다. 민선 6기 광주·전남 상생발전 차원에서 ‘이서’를 시작으로 제한적인 개방 결정을 내렸다. 이곳은 현재도 매주 수·토·일요일에만 하루 360명씩 인터넷 예약을 통해 탐방할 수 있다.

적벽 일대는 환경 보존이 잘된 덕분에 고산식물부터 난대식물까지 다양한 식생이 분포한다. 왕버들과 버드나무, 굴피나무, 서어나무, 개서나무 등이 천연 혼합림을 형성하고 있다.

전남 화순의 적벽 4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 웅장한 붉은색 수직 적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화순의 적벽 4개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 웅장한 붉은색 수직 적벽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노루목적벽 인근의 거북섬. 거북머리 모양을 한 섬이 동복댐 건설 과정에서 수몰된 마을들 쪽을 향하는 것처럼 보여 수몰민들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노루목적벽 인근의 거북섬. 거북머리 모양을 한 섬이 동복댐 건설 과정에서 수몰된 마을들 쪽을 향하는 것처럼 보여 수몰민들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조선시대 10경 중 하나인 전남 화순의 적벽.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으로 지정된 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돼 천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조선시대 10경 중 하나인 전남 화순의 적벽.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으로 지정된 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돼 천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안내도.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안내도. 프리랜서 장정필

화순 적벽 위치도. 네이버 지도 캡쳐

화순 적벽 위치도. 네이버 지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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