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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 무게 때문에 아파트가 무너졌다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8호 32면

서울역에서 남대문과 염천교 사거리로 갈라지는 길모퉁이에 오래된 4층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건물 높이만큼 자라난 가로수와 간판들에 가려 길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보면 잘 보인다. 1959년 지어진 관문빌딩으로, 서울 시내 최초의 상가주택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타일인데 세종로ㆍ을지로ㆍ남대문 길가에 비슷한 4~5층짜리 건물이 많다. 모두 50년대에 지어졌다. 이를 짓게끔 주도한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왜 그랬을까.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저자: 박철수 출판사: 집 #가격: 2만2000원

숨가쁘게 바뀌기만 할 뿐 ‘왜 이걸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살피지 않는 요즘,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의 생활세계를 해설해 보겠다”며 이 책을 냈다. 50년대 상가주택과 같은, 일상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해설했다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탄탄하다. 공공기관의 각종 문헌을 토대로 신문 기사ㆍ소설ㆍ광고 등을 총망라했다.

상가주택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은 58년 1월 7일 국무회의에서  “(수도 서울의) 중심부 주요 가로에는 4층 이상의 건물을 짓되 1층은 점포로 하고 2층부터는 주택으로 사용하면 토지 이용 효율도 높아지고, 외국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라며 건설을 독려한다. 을지로나 남대문을 걷다 보면 만나는 낡은 건물들이 왜 4층 규모로, 비슷비슷하게 지어졌는지 알게 된다. 수도 관문으로서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정부 주도로 지었던 건물들이다. 1~2층은 점포고, 3~4층은 주택으로 썼다.

60여 년이 흘러 상가주택은 점점 헐리고 있다. 저자의 일침이 뼈아프다. “아무런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낡고 늙은 건축물인 까닭에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면 서울을 역사 도시요 문화도시라 부를 까닭이 없다, (중략) 적어도 다음 세대를 위해 충실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장독대 하나에도 우리 주거사가 담겨 있다. 60~70년대 아파트가 막 지어질 참에 장독대는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장독대 없애기’를 주제로 11편의 계몽영화를 만들었다. “장을 사 먹으니 편하고, 쥐가 목욕한 간장도 그대로 퍼먹어야 하니 위생상 좋지 않다”는 내용이다. 70년 와우시민아파트 붕괴의 원인으로 얼토당토않게 ‘장독으로 인한 하중’이 꼽히면서 발코니 장독대 사용금지 조치가 시행되기도 했다. 집마다 십수개씩 있던 장독대는 아파트 시대를 맞아 그렇게 점점 사라져 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정봉의 집은 ‘불란서식 미니 2층’으로 불리며  70~80년대 많이 지어졌던 양식이다. 왜 미니 2층이라고 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흥미롭다. “당시 크게 유행하던 미니스커트라는 이름의 짧은 치마에서 가져온 미니를 주택 이름에 보태 온전한 2층보다는 높이가 낮은, ‘반지하+1층’이 결합한 주택을 미니 2층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임대수익을 얻고자 미니 2층 집이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난다. 82년생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각종 통계자료로 재현해 30대 여성이라면 고개를 한 번쯤 끄덕이게 한 책이다. 김지영을 집으로 치환하면 이 책이 될 듯하다. 소소한 집 이야기 안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우리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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