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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인기작가] 7. 레오 리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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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레오 리오니(1910~1999.사진)의 작품은 두고두고 효력을 발휘하는 보약 같다. 처음 봤을 때 이 작가의 책은 찢고 오리는 콜라주, 단단한 야채 등에 물감을 묻혀 찍어내는 형식 등 그래픽 디자이너.화가.조각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실험의 장처럼 보인다. 쥐.물고기.달팽이 등의 특징을 잘 잡아낸 표현과 아름다운 색채에 빠지면 누구나 레오 리오니의 팬이 되고 만다.

그런데 리오니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리오니는 중년을 넘어 어린이책 작가로 입문했다. 경제학 박사이자 미국 그래픽 아트 협회 회장까지 지낸 성공한 생활인이었던 리오니의 책에는 나이 든 이들만이 가진 삶의 지혜와 평온함이 묻어난다.

그가 보여주는 주제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누군가 사랑해주기를 바라며 장난감 태엽쥐가 되길 바라지만 역시 살아 있는 생쥐가 좋다는 사실을 깨닫는 '새앙쥐'('새앙쥐와 태엽쥐'(마루벌)), 올챙이 친구가 개구리가 되어 물 밖으로 나가자 그를 따라 바깥 세상을 구경하려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물고기'('물고기는 물고기야!'(시공주니어)) 등을 통해 정체성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모험 정신을 간과한 듯한 줄거리지만, 인생을 살고 보니 역시 자기가 가진 특성을 인정하고 그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이번에 새로 번역돼 나온 '세상에서 가장 큰 집'(마루벌)에서도 드러난다. 뽐내기용으로 큰 집을 지고 다니고 싶어하는 달팽이가 큰 집 때문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다른 달팽이 이야기를 듣고 작은 집을 가지고 다니게 된다는 내용이다.

또 리오니는 전체를 위한 협동정신을 강조한다. '으뜸 헤엄이'(마루벌)에서는 큰 물고기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떼 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리오니의 책은 번역본도 좋지만, 영어 원문에서 느껴지는 시적 표현은 어린이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뱀장어는 "너무 길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기 어려운 뱀장어(an eel whose tail was almost too far away to remember)"로, 말미잘은 "분홍빛 야자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말미잘(pink palm trees swaying in the wind)"('으뜸 헤엄이'중에서)이라고 묘사한다.

그런데 이런 시적 표현의 깊은 맛을 어린이들이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 리오니 예찬론자들은 큰 사건없이 진행되는 리오니의 책이 지루하게 여겨지더라도 그의 그림과 글을 보고 자라면 언젠가는 남다른 감성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오니는 50세에 회화와 조각을 시작했다. 그림책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손자 때문이었다고 한다. 손자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그림으로 엮은 '작은 노랑이와 파랑이'가 첫 그림책이다. 이후 '조금씩 조금씩''으뜸 헤엄이''프레드릭'(시공주니어) '새앙쥐와 태엽쥐'로 칼데콧 아너상을 네 차례나 받았다.

홍수현 기자

<사진설명>
큰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 처음에는 다른 달팽이의 부러움을 사지만, 결국 너무 큰 집 때문에 흔적없이 사라지고 만다. 리오니의 철학이 배어 있는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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