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슬픈 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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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슬픈 국' - 김영승(1959~ )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 하겠다.

고깃국은 ……

봄이다. 고깃국이.


그래, 아무래도 국은 슬프다. 그냥 슬프다. 아픈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밥상에서 국은 제일로 흐릿한 눈동자를 하고 앉아 있다. 된통 앓은 후라 오늘은 국만 한 술 떴다. 행여 나의 입맛이라도 돋우려 아내는 오늘 아침상에 토장국을 내놓았다. 또 근근이 살아가자고 아픈 몸이 맑은 국 한 그릇을 받는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다시 온 봄처럼.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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