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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LG전자 창원R&D센터... 연구원이 조리하고 물맛 보며 수출도 '쑥쑥'

중앙일보

입력

“집에서 프라이팬이나 일반 오븐으로 스테이크를 구우면 마음처럼 잘 안 되잖아요. 겉은 금방 검게 타는데 속은 제대로 안 익어서 애먹는 경우가 많죠.”

지난달 개소해 R&D 인력 1500명 근무 #'요리개발실' '시료보관실' 등 이색 공간 #맞춤형 R&D로 170개국에 주방가전 수출

지난 6일 LG전자 경남 ‘창원연구개발(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 이 회사 이고은 선임연구원이 이같이 말한 다음, 최근 미국에 출시한 ‘프로베이크 컨벡션(ProBake Convection)’ 오븐에서 구워낸 스테이크 한 덩이를 잘게 잘라 보여줬다. 고기의 겉과 속이 알맞게 익어 있었다. 한입 베어 물자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처럼 부드럽고 진한 식감이 느껴졌다.

LG전자 창원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에서 연구원이 조리법 개발을 위해 조리기기를 쓰고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창원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에서 연구원이 조리법 개발을 위해 조리기기를 쓰고 있다. [사진 LG전자]

비결은 ‘수비드(sous-vide)’라는 프랑스풍 저온조리법. 일반 스테이크 조리법에선 섭씨 200~300도로 바짝 굽지만 수비드 조리법에선 55도로 장시간 조리한다. 밀폐된 비닐봉지에 음식물을 담아 미지근한 물 속에서 오래 익힌다. 그러면 겉과 속이 고르게 가열돼 본연의 맛과 향이 유지된다. 이 연구원은 “각종 조리기기가 완비된 요리 개발실에서 R&D 인력들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면서 신제품에 탑재되는 레시피(조리법)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 창원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에서 연구원이 조리법 개발을 위해 조리기기를 쓰고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창원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에서 연구원이 조리법 개발을 위해 조리기기를 쓰고 있다. [사진 LG전자]

그 말대로 요리개발실 안엔 화덕 외에도 오븐과 제빵기, 야외용 그릴 등이 가득 있었다. 이곳에서 연구원들은 조리법을 개발하고 신제품에 탑재할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과정을 거듭한다. 수비드 조리법도 이렇게 해서 신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다. 스테디셀러인 ‘디오스 광파오븐’에 탑재되는 조리법도 여기서 개발된다. 최신 디오스 광파오븐(ML32PW)은 쿠키·닭요리 같은 130개 조리법을 기본 탑재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총 272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

LG전자 창원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에서 연구원들이 조리법 개발을 위해 조리기기를 쓰고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창원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에서 연구원들이 조리법 개발을 위해 조리기기를 쓰고 있다. [사진 LG전자]

조리법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국내 소비자들의 까다로워진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해외 수많은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에 맞는 조리를 해주는 제품을 만들어야 수출에도 그만큼 탄력을 받을 수 있어서다. LG전자 주방가전은 세계 170개국에서 판매될 만큼 인기인데 선봉장인 오븐의 경우 중동 지역 수출용 제품엔 케밥 조리법을, 인도 지역 수출용 제품엔 카레 조리법을 탑재하는 식으로 ‘현지화’한 것이 주효했다.

LG전자 창원R&D센터 지하 1층 시료보관실 전경. 지하 2층까지 냉장고와 오븐 등 약 750대의 주방가전이 보관돼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창원R&D센터 지하 1층 시료보관실 전경. 지하 2층까지 냉장고와 오븐 등 약 750대의 주방가전이 보관돼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가 2015년 연면적 5만1000㎡에 지상 20~지하 2층 규모로 착공, 지난달 문을 연 창원 R&D센터는 요리 개발실처럼 이색적인 공간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지하 1~2층은 여느 회사 건물들처럼 주차장이 아니다. 두 층 전체가 ‘시료(시제품·견본품)보관실’로 꾸며져 냉장고·오븐·식기세척기 등 750여 대의 주방가전이 자동차 대신 빼곡히 ‘주차’돼 있다. 예컨대 김치냉장고라면 양문형·스탠드형 등 종류별로 있어 어떤 R&D에든 간편히 활용할 수 있다. 권오민 선임연구원은 “각 분야 연구원들이 사무실에서 수시로 오가면서 공유와 협업을 할 수 있다”며 “연구원들이 도서관처럼 여기고 있다”고 했다.

LG전자 창원R&D센터 4층 3D프린터실에서 연구원들이 3D프린터로 만든 시제품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창원R&D센터 4층 3D프린터실에서 연구원들이 3D프린터로 만든 시제품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전자]

이번엔 4층 ‘3차원(3D)프린터실’에 가봤다. 8억원짜리 미국산 ‘Fortus 900mc’ 등 총 4대의 첨단 3D프린터가 부지런히 로봇 팔을 움직여가며 시제품 모형을 생산 중이었다. 냉장고의 문 같은 큰 부품 모형도 설계한 대로 오차 없이 정교하게 만들어낸다. 3D프린터 도입 전보다 시제품 제작에 걸리는 시간이 30% 단축됐고, 비용도 연간 약 7억원씩 절감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LG전자 창원R&D센터의 외부 전경. [사진 LG전자]

LG전자 창원R&D센터의 외부 전경. [사진 LG전자]

LG전자는 R&D 인력의 전문성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연구원 개개인의 역량이 소비자 혜택으로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한국에 100여 명만 있다는 ‘워터 소믈리에’다. 일반 소믈리에가 와인 맛을 감별하듯 눈 감고도 물맛을 가려낸다. 그는 “2013년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는 워터 소믈리에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정수기 개발 과정에서 물맛에 이상이 없는지, 어떻게 해야 더 물맛이 좋은 정수기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한다”고 했다. 이 밖에 김치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김치 연구가’ 등 약 1500명의 R&D 인력이 근무 중이다.

송대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창원R&D센터는 연간 125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주방가전 시장을 공략하는 전진 기지이자 LG전자 모든 주방가전의 산실”이라며 “창원공장도 2023년까지 스마트팩토리로 탈바꿈해 시너지를 도모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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