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괜찮아, 아빠 강해' 퇴직가장의 허울 버려라

중앙일보

입력 2017.11.07 04:00

업데이트 2017.11.07 13:47

변화는 설레는 모험임과 동시에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다. [사진 Freepik]

변화는 설레는 모험임과 동시에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다. [사진 Freepik]

사람은 살면서 여러 차례 변화를 겪게 된다. 변화는 설레는 모험임과 동시에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다.

박영재의 은퇴와 Jobs(8)
상실의 과정을 슬퍼하는 용기 필요
정화하지 않고 어설프레 봉합하면
심장마비 등 치명적 병에 걸릴 수도

가장 첫 번째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안락하고 편안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그것이다. 물론 여기서 흙수저와 금수저의 구분은 있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변화는 질풍노도의 사춘기이다. 사춘기를 지나서 성인이 돼도 변화의 연속이다. 사업에 성공하기도 하고, 결혼에 실패하기도 한다. 어떤 소망은 이루어지고, 어떤 소망은 물거품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때로는 화려하지만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중년의 위기를 겪게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면 은퇴라는 매우 중대한 변화가 다가온다. 온종일 일하는 회사생활을 접고 은퇴 이후의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전환점, 즉 저세상으로 떠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변화(Change)와 전환(Transition)이라는 단어의 뜻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변화는 어떤 사건을, 전환은 어떤 과정을 각각 의미한다. 인생의 큰 변화는 우리의 외부 세상을 바꾸면서 연쇄적으로 내부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전환이란 크게 변화된 삶에 적응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일컫기도 한다.

일자리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간적이지 않다. [중앙포토]

일자리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간적이지 않다. [중앙포토]

많은 사람이 실직이나 이직, 퇴직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주는지 잘 안다. 하지만 새로운 존재인 자신을 받아들이려면 어떤 심리적 변화가 필요한지 무지한 편이다. 일자리를 잃는 것은 순간적인지만 일자리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간적이지 않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출근할 곳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매일 새벽에 집을 나서던 내가 아침 9시에 아파트 현관에 보이는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에 익숙해져야 하며, 회사 이메일이 막히고 개인 메일로 바꿔야 한다. 매달 25일 급여가 입금되던 통장의 잔고가 0으로 바뀌는 가운데 새로운 일자리를,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의식한 상태에서 겪기 때문에 첫 번째 변화인 출생보다 충격적이다.

은퇴는 끝, 그리고 시작

전환은 끝과 함께 시작되고 시작과 함께 끝나기도 한다. 실직한 순간 나는 구직자가 되거나 은퇴자가 되며, 구직에 성공한 순간 나는 새로운 직장인이 될 것이다. 전환은 나에게 익숙한 과거를 버리고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알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두려움이 생긴다. 또 과거에 성공했던 직장인에겐 실직 스트레스가 더 클 수 있다.

실직 스트레스. [사진 Gratisography]

실직 스트레스. [사진 Gratisography]

이런 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백기가 생긴다. 이 공백기를 현명하게 활용하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공백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은퇴 전에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웠다면 미래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인생의 회복과정 모델이 있다. 어떤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 이를 회복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질서 - (변화) - 침체상태 - 자기 세계에 틀어박힌 생활 - 회복의 단계를 거친다. 이 사이클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멘탈이 강한 사람은 큰 변화가 있을 때 바로 회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사이클이 상당히 길게 나타나기도 한다. 밖에서 보기에는 동일한 변화여도 이를 받아들이려는 사람의 심리상태는 10인10색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에서 방어기제라는 용어가 있다. 방어기제는 변화가 있거나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다. 감정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솝우화에 방어기제 중 하나인 자기합리화에 대한 예가 나온다. 여우와 신 포도에 관한 우화다. 여우 한 마리가 포도밭을 지나다 보니 너무 먹음직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 맛있는 포도를 먹기 위해서 껑충껑충 뛰는데, 문제는 포도가 너무 높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사진 유튜브 캡쳐]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사진 유튜브 캡쳐]

한참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면서 여우는 마음속으로 ‘저 포도는 보기에는 저래도 실제는 시큼하고 별 맛이 없을 거야’라며 자기 마음을 다스린다는 내용이다. 방어기제는 부정·투사·동일시·전위· 합리화·퇴행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개인별로 회복에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인 전환에는 반응전환과 발달전환이 있다. 반응전환은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발달전환은 과거 자신의 모습이나 일하면서 누린 명성이 사라지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말한다.

중역으로 퇴직한 친구에게 퇴직 후 어떤 변화가 있냐고 물어봤다. 사용하던 자동차를 반납한 것(사실 임원승진 후 총무 부서에서 어떤 승용차를 사용하겠느냐는 자동차 카탈로그를 받고 고를 때의 감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이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이었다. 주유 카드와 업무용 법인카드를 반납해 지갑이 얇아진 것, 직함이 없어지면서 명함도 사라진 것 등도 꼽았다.

퇴직을 인생 재창출의 기회로  
슬퍼할 용기가 필요하다. [사진 Freepik]

슬퍼할 용기가 필요하다. [사진 Freepik]

삶에서 중요한 변화가 생기면 그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 소모가 심할 수 있다. 소중하던 과거 기억에 작별을 고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순간적인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비록 이러한 과정이 고통스럽겠지만, 이를 자아를 실현하고 인생을 재창출하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상실의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슬퍼할 용기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중년 남성 직장인에겐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있는데, 이것이 더 큰 스트레스를 부른다.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짤려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장이라는 허울 때문에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괜찮아, 아빠는 강해!’ 라는 멋진 모습만 보이지 말자.

슬퍼하고, 화를 내고, 술도 마셔보고, 미친 듯이 운동도 해 보고, 감정을 누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자. 이 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이 과정을 정화하지 않고 어설프게 봉합하면 결국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 등의 치명적인 병으로 연결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나은 인생과 직업을 찾는 계기로 활용하자.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zang1@naver.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