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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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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29면

[CULTURE TALK] 

‘춤추는 강의실’에서 미리 만난 ‘슈팅스타’

20여년 전 대학 시절, 과제 해결을 위해 난생 처음 현대무용 공연을 보러 갔다가 함께 간 동기와 ‘현대무용은 볼 게 아니’라며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팔랑거리는 한 장 짜리 프로그램에 안무가와 무용수 프로필 정도의 정보가 있을 뿐, 어떤 맥락에서 나온 춤이고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괴로웠던 탓이다.

아직도 종종 그때의 다짐이 떠오르곤 한다. 얼마 전 국립현대무용단이 해외안무가 초청 신작을 올린다는 소식에도 심드렁했다. 프랑스의 젊은 안무가 부부가 국악그룹 블랙스트링의 음악에 맞춰 작품을 만드는 ‘슈팅스타’(11월10~12일 예술의전당) 얘기다. 요즘엔 각종 무용축제를 통해 해외 거장급 안무가의 화제작도 꽤 오는데 굳이 낯선 안무가의 무대에서 뭘 느낄 수 있을까. 새삼 대학 시절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러다 ‘춤추는 강의실’에서 오픈 리허설을 한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생겼다. ‘춤추는 강의실’은 국립현대무용단이 올 시즌부터 매달 1회씩 진행하고 있는 일반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으로, 정기공연을 앞둔 때는 공연에 관한 프리뷰 성격의 행사가 열리고 공연이 없는 달은 현대무용의 역사와 테크닉 등 이론적 강의가 진행된다.

지난달 24일 저녁. 예술의전당 연습동 현대무용스튜디오는 40여명의 수강자들로 빼곡했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의 진행으로 두 안무가의 출생과 교육적 배경부터 안무스타일의 변천사 등이 동영상 자료와 함께 소개됐고, 20분 정도의 리허설 시연 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대부분 무용 전공자들이 보러 왔을 거란 예상과 달리 중년층 수강자가 많았고,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수강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질문하는 내용도 사뭇 진지했다.

안무가 로렁스 야디와 니꼴라 껑띠용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인들이지만 둘 다 알제리와 인연이 깊다. 부친이 알제리 태생인 로렁스는 어린 시절 아랍권 문화를 거부했지만 성인이 된 후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아랍 문화와 프랑스 문화의 딸’이라 자처하게 됐고, 록밴드 기타리스트 출신인 니꼴라도 알제리인이 만든 무용단에서 무용을 시작했다. 여기서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아랍 문자를 몸으로 써 내려가는 듯한 독특한 움직임 ‘퓟퓟(FuittFuitt)’을 개발해 세계에 전파 중인데, 기존의 프랑스 현대무용 흐름과 전혀 차별화된 시도인데다 ‘마캄’이라는 아랍 음악 체계를 유럽 안무가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라 의미를 더한다.

지난해 초연된 ‘슈팅스타’는 이 ‘퓟퓟’으로 관통하는 작품인데, 이번엔 한국무용수들과 함께 마캄 대신 블랙스트링의 음악과 콜라보를 시도하는 또 다른 차원이다. 니꼴라는 “마캄은 음과 음 사이를 연주하기에 우리 안무도 동작과 동작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특징인데, 한국음악도 음과 음 사이 이어지는 느낌이 마캄과 비슷하다. 하지만 블랙스트링 특유의 느낌을 살려 모든 동작을 초연 때와 다르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연 내내 흐르는 듯한 움직임이 정지 없이 지속되는 안무는 무용수들에게 극한의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이들이 바로 슈퍼히어로를 상징한다”는 게 니꼴라의 말이다. “춤을 추려면 투쟁하는 힘이 필요하죠. 무용수들은 인생을 걸고 무대에 몸을 던집니다. 슈퍼맨이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 길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얘길 하고 싶어요.”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슈팅스타’에 더 호기심이 동한다. 내셔널리즘, 로컬리즘이 팽배해진 험악한 시대에 아랍 문화를 몸으로 끌어안은 유럽 예술가들도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가 아닐까 싶다. 이들이 한국의 음악과 한국인들의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도 무대에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공연은 이해하지 말고 즐기라고 하지만, 적어도 현대무용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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