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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떼창하고 통하면 남녀 합석 … 2030 ‘감주’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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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촌·홍대·이태원·강남 … 요즘 청춘들 노는 법

“죄송하지만 80년대생은 입장이 안 돼요.”

80년대생은 입장 불가 #대학 1~3학년생 주말 500명 몰려 #공부·취업 고민 잊고 하룻밤 일탈 #태블릿으로 현장서 채팅 #각기 다른 방서 탐색한 뒤 ‘합방’ #2시간 이내 성공 못하면 방 빼야 #남자들은 이성 만남이 목적 #“차 끊길 시간 되면 남자가 대다수 #운 나쁘면 논산 훈련소 같아져”

입구를 지키는 직원은 단호했다. 신분증을 되돌려 받으며 왜냐고 물으니 “20대 초반 학생들이 주로 오는데 좀 그렇잖아요”라고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지난 1일 오후 10시 서울 신촌의 D주점 앞, 만 스물아홉인 기자는 보기좋게 입장을 거부당했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뒤로 10여 명의 대학생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학교 점퍼엔 학번이 적혀 있었다. 16학번, 17학번이 대부분이었다. ‘왜 저렇게 시간을 끌지’ 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이곳은 최근 젊은 층의 놀이문화로 주목받는 ‘감성주점’. 줄여서 ‘감주’로 불리는 곳이다. 유행이 지난 가요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이성과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게 이 주점의 특징이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감성주점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20대들. [여성국·하준호 기자]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감성주점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20대들. [여성국·하준호 기자]

◆시작 땐 여성이, 끝날 땐 남성이 많아=D감성주점의 매니저 장현수(44)씨는 “대학 1~3학년 학생이 주고객이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이 몰리는 주말엔 최대 500명 정도가 온다. 성비는 여성 6, 남성 4 정도다. 아이돌 노래를 즐기러 오는 여학생이 많아 여학생 비율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에게 80년대생 손님을 받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어울리지 못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직원들이 논의해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두 달 뒤면 90년생도 입장이 어렵다.

장씨의 양해를 얻어 ‘노령(88년생)’임에도 감주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92년생 동료 기자와 다시 합류했다. 수십 개의 테이블에 앉거나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손님 200여 명이 중견가수 윤종신의 노래 ‘좋니’에 맞춰 ‘떼창’을 하고 있었다. D주점에서 2년째 일하는 이태훈(21)씨는 “잠시 쉴 땐 발라드가 나온다. 다들 아는 가요가 나와 따라 부를 수 있고, 스테이지가 없어 부담없이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게 감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영업을 시작하면 여자가 더 많지만 막차 시간 전후로 성비가 바뀐다. 차가 끊길 시간에 막바지 헌팅이라도 해 보려는 거다. 남성 손님의 80% 이상은 여성과의 합석을 목적으로 온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그룹 2PM의 노래가 나오자 손님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촌의 감성주점 입구에서 손님들의 나이(1990년 이전 출생)를 확인하는 모습. [여성국·하준호 기자]

신촌의 감성주점 입구에서 손님들의 나이(1990년 이전 출생)를 확인하는 모습. [여성국·하준호 기자]

◆태블릿으로 ‘톡’하다 합석=D주점 앞에서 만난 대학생 이한울(21·여)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온다. 오늘도 밥 먹고 소화시킬 겸 춤추러 왔다. 가끔 남자들이 합석하자고 하지만 보통은 친구들이랑 스트레스를 풀고 신나게 놀려고 온다. 합석해서 인연으로 발전하더라도 오래가는 건 못 봤다”고 말했다.

신촌뿐 아니라 홍대 인근도 감주 영업이 활발하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는 7개가 있다. 가장 영업이 활발한 곳은 평일 밤에도 수십 명이 입장을 기다린다. 주말엔 한 시간 넘게 대기한다.

홍익대 인근의 한 감성주점 벽에 ‘솔로 탈출’을 기대하는 손님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홍익대 인근의 한 감성주점 벽에 ‘솔로 탈출’을 기대하는 손님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홍대 앞 S감성주점 매니저 B씨(21·여)는 “400명 이상이 몰리는 주말에는 이른바 ‘수질 관리’를 하기도 한다. 보통은 남성 손님이 여성 손님 테이블로 가서 헌팅하고 합석하면 우리가 따로 테이블을 잡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성과의 합석이 용이하다는 장점으로 호객을 하는 업소도 있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분위기가 대세이긴 하지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M감성주점은 2인 이상의 동성 손님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지정된 방에 들어가면 태블릿 PC가 놓여 있다. 태블릿 PC에 깔린 채팅앱에서 다른 방에 어떤 성별의 몇 명이 와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채팅을 하면서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얼굴 대신 손이나 가방 등 소지품을 찍어 보내기도 한다. 채팅으로 합석이 성사되면 남성들이 여성들이 있는 방에 가 함께 논다. 업소가 정한 ‘제한 시간’도 있다. 2시간 안에 합석에 실패하면 방을 비워야 한다.

마이크를 들고 주점을 홍보하는 직원. [여성국·하준호 기자]

마이크를 들고 주점을 홍보하는 직원. [여성국·하준호 기자]

◆감성에 젖고 싶은 청춘들=낮은 연령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도 있다. 강남·홍대·이태원 등에 지점을 둔 B감성주점은 93년 이전 출생자만 입장이 가능하다. 홍대점을 맡고 있는 이사 C씨는 “우리는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노래가 나온다. 이 노래를 공감하지 못할 나이는 출입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C씨는 “최근 우리를 벤치마킹한 감성주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영업에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친구들과 종종 B감성주점에 간다고 했다. 이씨는 “이성을 만나러 감주에 가지만 여자 비율이 많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운이 나쁘면 논산훈련소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감주에서 만난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다. 남자 대부분은 짧은 만남이 목적이다. 언젠가는 친구가 합석을 제안한 일행에 회사 동료가 있어 서로 민망해한 적도 있다”고 했다.

감성주점 입구에 붙은 과음 주의 경고. [여성국·하준호 기자]

감성주점 입구에 붙은 과음 주의 경고. [여성국·하준호 기자]

감주는 2000년대 초·중반 건대·신촌·홍대 등 서울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다 쇠퇴했던 업태다. 하향세를 걷다 2015년 전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오래된 유행가와 가수를 찾아 공연을 한 방송이 히트하면서 사라졌던 업소들이 다시 생겼다. D감성주점은 86년 1호점이 생긴 이후 최근 2~3년 사이 9호점까지 확장했다.

음악을 듣고, 술 마시고, 이성을 만나는 일상적인 술집 모습에 왜 감성주점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대학생 어모(21·여)씨는 “감성주점에 가면 우리가 중고생 때 듣던 빅뱅이나 소녀시대 노래가 나온다. 그때 감성과 추억을 떠올리게 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전모(28)씨는 “감주에는 이성적인 사람이 별로 없다. 다들 잠시 이성을 잊고 놀아서 감성이라는 말이 붙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학생 때는 취업 걱정, 취업을 해도 학자금 상환이나 내 집 마련 걱정을 한다. 감주에선 잠시나마 그런 고민을 잊고 일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막차가 끊긴 새벽 2시, 신촌의 D감성주점을 나온 청춘들이 비틀거렸다.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부르는 이들, 다른 술집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별 입장이 허락된 열정적인 술자리가 끝나자 문득 심보선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청춘을 제외한 나머지 생에 우리는 너무 불충실하였다.’ 이게 감주 효과일까.

[S BOX] 감성주점 즐기려면 꼭 지켜야 할 3대 에티켓

음주가무를 즐기며 감성에 젖는 청춘들이 모인 감성주점에도 에티켓이 있다. 오늘 밤 감성주점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

1.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D감성주점 매니저 장현수(44)씨는 “때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합석에 실패하면 NO를 NO라고 받아들이자. 직원 이태훈(21)씨는 “억지로 끌고 나가려 하거나 무리하게 합석을 요구하면 직원이 나서 제지한다. 거절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다른 테이블로 가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2. 신분증을 챙겨야 한다.

대부분의 감성주점은 신분증 검사를 한다. 신촌의 D감성주점은 신분증에 적힌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얼굴과 사진을 대조한 뒤에야 손목에 확인 도장을 찍어 준다. 학생증이나 명함 등은 안 통한다. 감주의 목적이 손님들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D감성주점 매니저 한모씨는 “낯이 익어도 매번 신분증 검사를 한다. 영업방침과 법이 걸린 문제라 엄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3.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손병철 홍익지구대장은 “주취폭력 신고가 가장 많고 성범죄 신고도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간이 협소한 주점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절도 피해도 단골 범죄다. 손 대장은 “서로가 조금씩 배려하고 매너를 지키려고 주의하면 범죄도 예방하고 안전한 놀이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국·하준호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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