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국감준비 느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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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매년 이맘 때면 시.도 공무원 중 상당수는 밤샘 근무를 하느라 파김치가 되곤 했다. 9월에 시작되는 국정 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구성된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연대해 국정 감사의 대상인 '국가 사무'를 제외한 '지자체 고유 사무'에 대해선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로 원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전반적으로 볼 때 예년보다 제출 자료가 70%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시의 경우 28일 현재 6명의 국회의원들로부터 1백80여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3분의 2 가량인 1백여건은 고유 사무라는 판단에 따라 80여건만 자료를 준비 중이다.

13명의 의원들로부터 90여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충북도도 국가 사무에 해당되는 10건만 제출키로 했다.

강원도도 비슷한 실정이다. 도 직장협의회가 김무성 의원이 요구한 62건에 대해 '1998년 이후 그린벨트 변동 및 연도별 해제 현황' 등 국가 사무에 해당하는 2건만 제출하고 나머지는 제출을 거부키로 하는 등 제출 자료를 대폭 줄였다. 5명의 의원들로부터 1백여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충남도의 경우도 현재 직장협의회에서 요구 자료의 분류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국회가 지금까지는 관련 법을 무시한 채 지자체 고유 사무에 대해서도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행정력 낭비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88년 제정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사무에 대한 국정감사는 지방의회가 구성될 때까지만 실시토록 돼 있었다. 하지만 국회는 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된 이후에도 모든 사무를 대상으로 감사를 계속해 지방의회와 지자체 공무원들 반발을 사 오다 지난 2월에야 관련법을 개정해 감사 대상을 국가 사무에 한정토록 했다.

지방자치단체 사무=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시.도의 사무는 총 5천3백18가지. 이 가운데 44.5%(2천3백65가지)는 고유사무이고 55.5%(2천9백53가지)는 국가(중앙정부)를 대신해 맡은 사무다.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청소.교통.상수도 등은 지자체 고유 사무로, 전국적인 통일성이 요구되는 여권.주민등록.병무 등은 국가 사무로 돼 있다.

대전.춘천=최준호.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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