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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1996년 ‘5.18’ 수사하던 문무일 검찰총장도 사찰

중앙일보

입력

국군 기무사령부가 1996년 문무일 검찰총장(당시 검사)를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 총장은 당시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5ㆍ18 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검사였다.

기무사가 1996년 5.18 사건을 수사했던 문무일 검사(현 검찰총장)을 사찰한 내용이 담긴 문건. [민주당 이철희 의원]

기무사가 1996년 5.18 사건을 수사했던 문무일 검사(현 검찰총장)을 사찰한 내용이 담긴 문건. [민주당 이철희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31일 ‘5ㆍ18 특수부 문무일 검사, 동생이 희생된 피해자 가족’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했다. 기무사 소속 이 모 중사가 문 검사의 주변인들을 탐문하고 사찰한 내용을 윗선에 보고하는 형식이다.

이 문건에는 “서울지검의 5ㆍ18 특별수사본부 소속 문무일 검사는 5ㆍ18 당시 동생이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 가족으로 알려져 피의자 측의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문무일 검사는 61년 광주시 북구 유동에서 출생해, 80년 2월 광주일고 졸업, 고대법대를 거쳐 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이력이 담겼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수사검사가 고소ㆍ고발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으면 다른 검사로 교체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문 검사 주변에서는 문 검사가 수사본부장 등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주임검사는 아니나 5ㆍ18 피해자 가족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립 차원에서 수사에 참여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썼다. 문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한 셈이다.

이철희 의원은 이 외에도 두 개 문건을 더 공개했다. 1995년에 작성된 ‘헌재 연구관 5ㆍ18 검찰 결정에 부정적 인식’ 문건에는 헌법재판소의 내밀한 동향이 담겨있다. 헌재는 당시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5ㆍ18 관련자들을 불기소처분한 데 대해 헌법소원 심리를 하고 있었다. 기무사가 헌재를 예의주시한 이유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연령이 비교적 젊은 계층의 연구관 상당수가 검찰의 결정 처분과 5ㆍ18 사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고 썼다. 헌재가 젊은 연구관들의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아 검찰결정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놓을 것을 경계한 것이다.

또 다른 문건은 ‘5ㆍ18 관련 헌재결정내용 사전 누설자로 조승형 지목’이라는 제목이다. 기무사는 헌재의 결정 내용이 유출되자 당시 야당 추천으로 재판관이 돼 5ㆍ18헌법소원서 소수의견을 주도하고 있던 조승형 재판관을 지목했다. 이 보고서에서 “조승형 재판관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후 평민당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며 “헌재 결정 내용이 야권에서 먼저 흘러나온 점 등 정황을 비추어 볼 때 누설자는 조 재판관으로 추측된다”고 썼다.

이철희 의원은 “이른바 문민정부에서 수사검사나 헌법재판관 같은 법 집행관들마저도 기무사의 사찰 대상이었다는 점은 충격”이라며 “전두환의 보위부대로 5.18을 기획해 정권을 열었던 기무사(당시 보안사)는 민주화이후에도 오랫동안 진실은폐라는 ‘뒤처리’를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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