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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압승, 이거 실화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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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중의원 선거를 치렀는데 일본 정치는 달라진 게 없다. “‘아베 1강’의 독주가 싫다” “아베노믹스가 전혀 체감이 안 된다”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한다” 등 이런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집권 자민당은 되려 힘이 더 세졌을 뿐이다. ‘못살겠다. 바꿔보자’는 게 한국의 정치판인데 일본에선 왜 그런 판을 뒤집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선거 초반 제1 야당인 민진당의 당 대표가 공천을 포기했다. 공천권을 신생 정당에 맡겼다. 유행어처럼 ‘이거 진짜 실화냐’ 싶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장 당 대표를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을 것이다. 아마 다시는 정치권에 발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호된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 소속 의원들은 대체로 대표의 결정을 수긍했다. 뒤늦게 일부가 “무소속 출마하겠다”고 손을 든 정도다. 보다 못한 지지자들이 당을 만들라고 등을 떠밀었다. 신생 입헌민주당의 55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베 신조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한 40대 지인에게 물었다. 그는 “북한을 정권 연장에 이용하는 게 가장 맘에 안 든다”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아베 정권의 연장으로 이어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안정감 때문이야. 일본은 한때 매년 총리가 바뀌어서 이름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 있었어. 안정적으로 한 명의 총리가 오래 했으면 좋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 정권이 싫으면 야당(입헌민주당)을 찍어야 하지 않나”라고 물었더니 함께 있던 다른 지인도 동시에 질색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헌민주당의 전신인 옛 민주당은 2009년부터 3년간 3명의 총리를 바꿔가면서 아마추어 정치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원 없이 보여줬다. 애당초 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정권을 잡았으니 실력이 없었다. 그 뒤론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하니 실력을 쌓을 수 없는 악순환 속에 놓인 게 일본 야당의 현실이다.

바꾸고 싶어도 대안이 없는 국민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나 다름없다. 53.8%의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나 ‘지지하는 당 없음’이라는 정체불명 정치단체에 12만 표 넘게 몰리는 걸 보면 일본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못살겠다. 바꿔보자’가 한국식이라면 ‘웬만하면 바꾸지 말자’가 일본식 정서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일본에서 강한 야당을 보려면 꽤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보고 싶은 대로만 일본을 봐왔던 건 아닐까. 아베 총리가 최장수 집권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냉정한 분석이 필요한 때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