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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이어 스바루도 무자격 검사... 일본식 '카이젠' 한계

중앙일보

입력

잇따른 데이터 조작과 무자격 품질관리 등으로 일본 제조업의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한 때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메이드 인 재팬’이 어쩌다 이렇게 추락하게 된 걸까.

스바루 자동차의 요시나가 야스유키 사장이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무자격 종업원에 의한 검사를 실시해온 데 대해 사과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바루 자동차의 요시나가 야스유키 사장이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무자격 종업원에 의한 검사를 실시해온 데 대해 사과했다. [로이터=연합뉴스]

"30년간 무자격 직원이 검사" 닛산과 판박이 

27일 스바루 자동차는 자격이 없는 종업원이 출하 전 검사를 실시해온 사실이 발각돼 35만5000대 차량에 대한 리콜을 검토하기로 했다. 요시나가 야스유키(吉永泰之) 스바루 사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30년 이상 전부터 무자격 종업원에게 업무를 시켜왔다. 지금까지 잘못됐다는 인식없이 해왔다"고 밝혔다.
120만여대 리콜 사태를 부른 닛산자동차와 똑같은 형태의 부정이 발각된 것이다. 장기간 일상화된 형태로 이어져온 것도 판박이다.
스바루의 데이터 조작은 이달 말까지 국토교통성이 각 자동차 업체에 현황보고를 요구하면서 확인됐다. 26일 현재까지 도요타와 스즈키 자동차가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으나, 이 같은 ‘무자격 검사’가 다른 자동차 메이커로도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닛산, 스바루 외에도 혼다가 사이드미러가 주행 중 접히는 결함이 드러난 오딧세이 등 6개 차종 차량 22만2000대를 리콜하기로 하는 등 일본 자동차업체의 품질관리 허점이 잇따라 노출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이터 조작.. .고베제강 3번째 고개 숙여  

여기에 철강과 알루미늄, 구리 등 품질 데이터 조작했던 고베제강은 기계 사업 등에서 4건의 품질 조작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로써 고베제강이 데이터를 조작한 제품을 납품받은 곳은 총 525개사로 늘어났다.
가와사키 히로야(川崎博也) 고베제강 회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허리를 90도 숙여 사과했다. 가와사키 회장이 이번 사태로 고개를 숙인 것만도 벌써 세번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거래처의 약 80%에서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나머지 20%는 왜 확인이 안되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종적으로 이 회사 제품이 각종 음료수 캔이나 휴대전화 등 생활에 밀접한 제품에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 불안도 커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고베제강 자회사는 이번 데이터 조작으로 일본공업규격(JIS)인증이 취소됐다. 이 회사는 미 법무부로부터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상태로 막대한 벌금 부과 등의 제재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스바루 무자격 종업원 품질 검사 발각 #"30년 전부터 일상화" 닛산과 '판박이' #고베제강도 추가로 데이터 조작 확인 #시스템 개선 없이 현장에만 생산 압박 #"일본식 '카이젠' 시대상황 맞지 않아"

시스템 개선 없이 현장만 쥐어짜...'카이젠' 한계 

한 때 세계 최강 ‘메이드인 재팬’의 명성을 자랑했던 일본 제조업에 대체 왜 이런 위기가 온 걸까.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최근 이 같은 데이터조작이 만연해진 것은 경영진이 비용삭감 등의 부담을 현장에만 지운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영 혁신 등을 통해 생산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없이 현장만 쥐어짠 결과라는 것이다.

고베제강의 경우 자동차의 경량화로 알류미늄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증산을 실시했지만, 경영진이 생산시스템의 개선보다는 현장에 대한 압박만 계속해왔다. “납기에 늦어선 절대 안된다”는 압박이 지속됨에 따라 경영진과 현장의 괴리가 커졌고, 한계에 부딪힌 현장은 본사의 눈을 피해 데이터 조작이 이뤄졌다. 닛케이는 “닛산 자동차도 르노사와 합병해 글로벌기업이됐지만, ‘현장’에 의존하는 방식은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한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 계속되는 품질데이터 조작사건으로 일본 제조업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일본의 한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 계속되는 품질데이터 조작사건으로 일본 제조업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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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는 20세기형 일본식 제조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도 분석했다. 일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1엔, 1전이라도 깎으려는 집요함 즉 ‘카이젠(改善)’ 정신으로 제조업 신화를 일궈왔다. 그러나 저렴한 인건비로 무장한 신흥국의 등장과 디지털화의 진전 등으로 '카이젠'은 한계에 다달랐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경쟁의 대전제가 바뀐 상항에선 '카이젠'이 아니라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경영진의 안이한 인식도 드러났다. 고베제강 가와사키 회장은 “(데이터를 조작했더라도) JIS 규격내에 있으면 법령위반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가, 자회사가 구리파이프의 강도 데이터를 조작한 것이 뒤늦게 확인돼 JIS 자격이 취소됐다. JIS는 정부가 보증하는 품질인증마크로 ‘메이드인 재팬’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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