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중 가장 허무한 순간을 꼽는다면 욕실 샤워꼭지나 수도꼭지 청소 직후다. 공들여 닦아도 물때가 그대로 허옇게 끼어 있어 청소한 티가 안 난다. 욕조와 세면대의 파이프와 밸브도 마찬가지다. 뿌옇게 변해 있는데다 군데군데 녹까지 슬어 말끔한 느낌이 잘 안 난다. 하지만 늘 반짝반짝한 특급 호텔 욕실의 수도꼭지처럼 청소할 수 있는 방법, 의외로 쉬웠다. 땅콩버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욕실 청소에 무슨 땅콩버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번만 닦아보면 그 효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땅콩버터는 오래된 스테인리스 제품을 닦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낸다. 특히 일반적인 세제로 닦아서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 물때나 녹이 잘 없어진다.
비결은 땅콩이 함유하고 있는 지방 성분에 있다. 땅콩 지방이 오래도록 묵은 스테인리스의 녹과 물때를 녹여 제거한다. 또 표면에 코팅막을 만들어 반짝반짝한 광택을 낸다. 다시 물때와 녹이 생기는 걸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고의 청소도구는 땅콩버터 #수도꼭지 물때·녹 말끔 #마른 천에 덜어 문지르기만 하면 끝 #식초·기름보다 간편하고 코팅 효과까지
욕실의 스테인리스 제품을 닦는 방법으로 흔히 식초나 치약을 추천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보다 훨씨 간편하고 광택까지 낼 수 있다는 게 땅콩버터의 장점이다. 식초는 수도꼭지에 바른 후 잠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고약한 냄새를 감수해야 한다. 치약은 닦는 방법은 간편하지만 땅콩버터만큼 광택이 나진 않는다.
청소 방법은 간단하다. 닦을 물건의 물기를 제거한 후 마른 천에 땅콩버터를 소량 덜어 충분히 비벼 닦고 다시 한번 마른 천으로 닦아 마무리하면 된다. 땅콩가루가 스크럽 작용을 해 녹을 깎아내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땅콩버터로 무장한채 청소에 돌입했다. 매일 닦아도 없어지지 않던 욕조 위 수도꼭지가 첫 번째 타깃이다. 표면적이 넓어 다른 수도꼭지들보다 물 때 낀 게 더 확실하게 보여 늘 눈에 거슬렸던 곳이다. 벽과 연결된 밸브부분은 물때와 함께 허옇고 노랗게 녹도 슬어 지저분해 보였다.
땅콩버터를 묻힌 천으로 수도꼭지를 닦으니 처음엔 노란 땅콩버터가 수도꼭지에 묻었다. 움푹 들어간 홈과 부속들을 연결한 이음새에도 땅콩버터가 끼었다. 이 상태로 몇 번을 더 비비니 물때가 마치 홈쇼핑의 시연 장면처럼 사라졌다. 사이사이에 낀 땅콩버터는 못 쓰는 칫솔로 비볐더니 쉽게 없어졌다.
다음은 샤워기와 샤워기 호스를 닦았다. 샤워기는 물이 분사되는 부분은 빼고 손잡이와 머리를 닦는다. 땅콩버터가 들어가 분사구를 막을 수 있어서다. 호스는 땅콩버터를 묻힌 천 사이에 넣고 아래 위로 움직여 닦으면 된다.
욕실 샤워기와 수도꼭지, 세면대의 수도꼭지와 손잡이를 다 닦아도 천에 땅콩버터가 스며들어 남아있다. 이걸로는 물때나 얼룩이 생긴 스테인리스 주전자나 냄비, 가스레인지 후드 상판을 닦으면 효율적이다.
청소에 사용할 땅콩버터는 안에 땅콩 조각이 있든 없든 청소 효과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땅콩 조각이 없는 것이 더 좋긴 하다. 청소 과정에서 땅콩이 바닥에 떨어져 따로 치워야 해 번거롭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