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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호텔] 네덜란드가 외갓집이면 이런 기분일까?

중앙일보

입력

'네덜란드 베니스'로 불리는 히트호른. 초가지붕을 얹은 앙증맞은 집이 수로를 따라 들어서 있다.

'네덜란드 베니스'로 불리는 히트호른. 초가지붕을 얹은 앙증맞은 집이 수로를 따라 들어서 있다.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 내릴 일이 있으면 한번 시험해보라. 휴대폰에 해발고도가 표시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고 나의 현재 고도를 확인해보면, 마이너스 숫자가 뜰 것이다.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은 땅, 네덜란드에 들어섰다는 첫 증거라 하겠다.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초로 뒤덮인 평탄한 땅뿐이다 .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초로 뒤덮인 평탄한 땅뿐이다 .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에 방목해 놓은 소.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에 방목해 놓은 소.

네덜란드는 나라 이름 자체가 낮은(Neder) 땅(Lands)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동네 발제르베르크 조차 해발고도 321m에 불과하다. 이 마저 인공적으로 만든 둔덕이다.
네덜란드 운하가 만들어지기 이전을 상상해본다. 강이 흘러 바다로 흘러들어야 하는데, 바다보다 낮은 땅이 많으니 그 물길이 자연스럽지 않았을 거다.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한 강이 고이고 퇴적물이 쌓이면서 한 뙈기 한 뙈기 땅이 만들어졌다. 오랜 퇴적작용의 결과를 보여주는 장소가 네덜란드 북부 비어리븐 비든(Weerribben Wieden)국립공원이다. 수만 년의 시간 동안 수초 등이 퇴적돼 ‘이탄(泥炭, 습윤지에 퇴적한 분해가 불완전한 식물유체의 퇴적물)’이 된 땅 사이로 거미줄 같은 물길이 이어져 있다.

히트호른으로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일등공신은 롯지와 농가를 숙소로 운영하는, '더 담스 반 더 욘허'다. 보이는 건물은 호텔 레스토랑과 리셉션으로 쓰인다.

히트호른으로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일등공신은 롯지와 농가를 숙소로 운영하는, '더 담스 반 더 욘허'다. 보이는 건물은 호텔 레스토랑과 리셉션으로 쓰인다.

더 담스 반 더 욘허의 레스토랑. 80~90%의 식재료를 네덜란드에서 공수한다.

더 담스 반 더 욘허의 레스토랑. 80~90%의 식재료를 네덜란드에서 공수한다.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는 동네가 히트호른(Giethoorn)이다. 암스테르담에서 160㎞ 떨어진 히트호른은 2800여 명만 사는 작은 농촌마을로 ‘내가 사랑한 호텔’로 소개하려는 숙소 '더 담스 반 더 욘허(The Dames van de Jonge)'가 이 히트호른에 있다.
더 담스 반 더 욘허는 히트호른에서 나고 자란 ‘헤이셔 드 욘허’의 작은 집에서 출발했다. 헤이셔 드 욘허는 에어비앤비 등 공유숙박의 개념이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집을 여행자에게 개방한 인물이다. 1960년대 이 작은 마을로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을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찾아왔는데 변변한 숙소가 없어 헤이셔 드 욘허는 자신의 집에 이방인을 초대해 먹이고 재웠다.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한 탓에 네덜란드어 밖에 구사하지 못했지만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여행자와 교류했다.

외할머니, 어머니를 이어 더 담스 반 더 욘흐를 운영하고 있는 가브리엘라 에셀브루허.

외할머니, 어머니를 이어 더 담스 반 더 욘흐를 운영하고 있는 가브리엘라 에셀브루허.

헤이셔 드 욘허의 장녀인 롤리 드 욘허는 어렸을 때부터 객식구를 맞아들이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본격적으로 호텔경영을 하기로 마음먹고, 히트호른 마을에 레스토랑 및 20여 곳의 롯지를 지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으로 상경했다가 귀향한 롤리 드 욘허의 딸 가브리엘라 에셀브루허가 더 담스 반 더 욘허의 대표가 됐다.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와 그의 딸에게까지 이어진 기업이다.
가브리엘라가 호텔을 운영하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존의 롯지 뿐만 아니라 히트호른 농가 20여 곳을 객실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담스 반 더 욘허는 객실(집) 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히트호른에서 묵었던 농가.

히트호른에서 묵었던 농가.

2017년 9월 초 히트호른에 출장 차 갔다가 더 담스 반 더 욘허에 묵었다. 호텔 오너 가족의 친척이 오래 살았다는 집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농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농기구를 넣어두는 창고가 있고, 방 안에는 뒤주가 떡 하니 자리했다. 나무를 엮어 만든 침대, 손때 묻은 장식품, 손자손녀가 입던 옷가지 등도 걸려있었다. 분명 이국의 생경한 장소일텐데 왠지 시골 외할머니집에 놀러갔을 때처럼 마음이 평온했다. 낡은 집이었지만 화장실과 욕실 등을 깔끔하게 정비해 둬 불편함 없이 하룻밤을 지냈다.

낡았지만 예스러운 매력이 가득했던 객실.

낡았지만 예스러운 매력이 가득했던 객실.

집주인이 쓰던 물건을 그대로 놔뒀다.

집주인이 쓰던 물건을 그대로 놔뒀다.

깔끔하게 정비돼 불편함이 없었던 욕실.

깔끔하게 정비돼 불편함이 없었던 욕실.

히트호른에 늦은 밤 도착했던 터라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초를 말려서 지붕 위에 얹은 네덜란드식 초가집이 작은 수로를 따라 어깨를 잇댄 풍경이 평화로웠다. 수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땅을 잇기 위해 수많은 나무다리도 들어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히트호른을 두고 ‘네덜란드의 베니스’라는 별명으로 부른단다.

히트호른의 나무다리.

히트호른의 나무다리.

히트호른에 왔다면 반드시 체험해야 할 보트투어.

히트호른에 왔다면 반드시 체험해야 할 보트투어.

보트투어를 하다 마주친 오리떼.

보트투어를 하다 마주친 오리떼.

더 담스 반 더 욘허에 묵으면서 놀랐던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곤한 잠을 깨울 만한 차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히트호른은 도로보다 수로가 더 많아 차보다 보트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호텔 투숙객은 더 담스 반 더 욘허에서 제공하는 각종 액티비티도 체험할 수 있는데, 보트투어가 있어 냉큼 신청했다.

평화로운 히트호른 풍경들. 자동차보다 보트와 자전거가 더 흔한 동네다.

평화로운 히트호른 풍경들. 자동차보다 보트와 자전거가 더 흔한 동네다.

동화마을 같은 히트호른 풍경.

동화마을 같은 히트호른 풍경.

마을을 촘촘하게 잇는 물길을 가로질러 앙증맞은 집을 구경하고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에서 ‘국립공원’이라고 하면 설악산 지리산 등 ‘산’부터 떠오르는데, 네덜란드의 국립공원은 전혀 모양새가 달랐다. 산이나 언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평탄한 이탄층이 펼쳐졌다. 땅 위를 덮은 것도, 하늘을 가리는 것도 없었다. 내 주위를 두른 것이라고는 탁 트인 지평선뿐이었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한국에서 사는 나에게 지평선은 가장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네덜란드 히트호른의 '더 담스 반 더 욘허' #동화같은 유럽 농가에서 묵는 색다른 경험 #국립공원투어·보트투어도 즐길 수 있어

◇숙소정보=더 담스 반 더 욘허(dedamesvandejonge.nl)는 네덜란드 히트호른에 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히트호른까지 기차가 연결된다. 1시간 걸린다. 유레일패스로도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이다. 객실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농가객실은 10만원 선이다. 집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30만원대부터. 보트투어, 자전거투어, 비어리븐 비든 국립공원 투어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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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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