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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윤리와 너의 도덕이 충돌할 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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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호 30면

요즘 대학로에선 토요일 오후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연극을 중심으로 각종 공연장이 밀집해 있는 ‘젊음의 거리’를 아버지 세대들의 태극기 물결이 휩쓸고 있다. 메인 도로의 교통이 통제되어 차량 진입이 안 될 뿐 아니라 거리를 점거한 시위 인파를 비집고 걸어 다니기도 쉽지 않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 #기간: 10월 29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문의: 02-399-1000

왜 하필 대학로일까. 지난겨울 광화문 광장에 ‘블랙텐트’를 설치하고 블랙리스트 사태에 반발하며 대통령 탄핵에 큰 몫을 했던 연극인들에 대한 보수 세력들의 도전인 것 같다.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혹은 손주 세대의 대립을 보여주는 이 상징적인 풍경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왠지 답답해 온다.

서울시극단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이 세대 간 집단 대립의 풍경을 개인 간 대립으로 축소시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시대의 자화상이다. ‘환도열차’ ‘햇빛샤워’ ‘미국 아버지’등 현대사회와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해 온 장우재 작가의 희곡을 서울시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했다. 김 예술감독은 2015년 서울시극단 부임 이래 ‘공공극장의 의무’를 강조하며 매년 창작극 개발에 도전해 오고 있는데, 고연옥 작가의 ‘나는 형제다’(2015), 김은성 작가의 ‘함익’(2016)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 극작가들이 직설하는 생생한 우리 시대 이야기를 무대 위에 재현해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낡은 빌라에서 매일 같은 풍경으로 분주한 아침을 시작하는 인간 군상은 2017년 서울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옹기종기 모여 살며 비슷해 보이는 이웃들도 가만 보면 두 부류다. 상승욕구를 불태우며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여상을 나와 ‘옆도 안 보고’ 살다 정년퇴직 후 부동산 관련 수상한 사업으로 돈을 모은 현자나 남자 교수들의 술자리 비위까지 맞추며 교수임용에 목매지만 주변 사정에는 일체 무관심한 시간강사 지영은 전자다. 옥상에서 매일 손으로 진딧물을 잡으며 고추를 길러 이웃들에게 맘껏 따가라고 베풀지만 재건축 동의는 해주지 않는 광자나 단역 배우지만 포르노 출연은 거부하는 현태, 컴퓨터와 인터넷에 트라우마를 가진 실업자 동교 등은 후자다.

작품의 가제였다가 부제가 된 ‘Ethics Vs. Morals’ 처럼 양쪽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성공해서 당당해지는 것이 혁명이라고 믿는 전자에게 후자는 ‘부끄러운’ 존재다. ‘진짜 노력한 사람들한테 기대서 살려고 하는 별 것 아닌 사람들’이란 것이다. 재건축 동의를 하지 않는 광자가 미운 현자는 광자가 심은 고추를 몽땅 훔치다 싸움이 붙자 “남편도 없이 혼자 사는 년”이라 폭언을 퍼붓고, 이를 목격한 현태는 얼마 후 광자가 쓰러지자 모든 책임이 현자에게 있다며 사과를 요구한다. 동교가 불러온 청년들과 현태가 시위를 벌이고 신상을 털어도 끄떡없던 현자는 자신의 개가 실종되자 곧바로 무릎을 꿇는다.

어느 쪽이 윤리고 도덕인지는 모르겠다. 윤리와 도덕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미안. 죄송. 이해. 그런 말이 사는 데는 전혀 보탬이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과 최소한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영원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리라는 예감이다. 결국 동교와 현태가 선택한 해결책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을 뿐이고, 개 납치범이 밝혀지자 돌변해 쌍욕을 퍼붓던 현자가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며 낡은 빌라를 영영 떠나는 것처럼.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그런 사람의 신상을 털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부도덕한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흔하게 던져지는 질문이지만 대답은 쉽지 않다. 어딘지 미심쩍은 행동을 해 온 김광석 부인과 근거없이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대중, 아이를 놓친 엄마만 태우고 출발했다는 버스 기사와 목격자 승객을 둘러싼 공방 같은 최근의 사건들에서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가치관만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격렬한 단절, 그 일상적인 모습을 본다.

이 대립은 무엇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광자의 죽음으로 재건축이 성사되고 현자와 지영은 제 갈 길을 가지만, 광자를 돕고 싶었던 동교나 현태는 여전히 갈 곳이 없다. 아마도 양쪽 사람들은 이제 서로 만나지 않을테니 더 이상의 충돌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깊어져만 가는 단절의 골은 그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무대는 현태의 뜻 모를 긴 오열에서 암전으로 이어지며 막을 내린다. 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이 객석까지 전해져 극장을 나와서도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주말 오후 대학로에서 느낀 바로 그 답답함의 정체인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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