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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몰서 은행·포털·야구까지 삼킨 ‘미키 스타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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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호 14면

카카오의 성장 모델 일본 라쿠텐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카뱅)가 제도권 금융에 빠르게 안착하면서 그 모티브가 된 일본 라쿠텐(樂天)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어로 옮기면 라쿠텐의 사명은 ‘즐거운 세상’이다. 20년 전인 1997년 창업자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52) 회장이 직접 지었다. 그의 영어 이름은 만화 캐릭터 ‘미키마우스’에서 따온 ‘미키’다.

하버드서 MBA 마치고 97년 창업 #영어 못하면 해고, 게이단렌 탈퇴 #쇼핑몰서 쌓은 ‘수퍼 포인트’로 #커피값 내고 여행 갈 때도 활용 #이종 서비스, 단일 생태계에 묶어 #네이버·롯데도 벤치마킹 나서

온라인 쇼핑몰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한 미키타니 회장은 인수합병(M&A)으로 사업을 키워 나갔다. 2000년대 초부터 증권·카드·은행 등 금융업체를 잇따라 인수하고, 2014년에는 비밀 통화 기능을 갖춘 모바일 메신저 ‘바이버’를 9억 달러(약 1조원)에 사들였다. 일본 여행업계 1위 업체 ‘라쿠텐 트래블’ 역시 계열사다. 서로 연관관계를 찾기 힘든 개별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묶는 건 바로 ‘라쿠텐 수퍼 포인트’ 시스템이다. 수많은 이종 서비스를 단일 생태계에 묶은 전략 덕분에 회사 모태라 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 이치바(市場)’의 연간 거래액은 1조4460억 엔(약 14조4400억원)이다. 2위 업체인 아마존재팬(7300억 엔)의 두 배에 달한다.

창업 20년 만에 일본 4위 부자로 떠올라

은행원 출신인 미키타니 회장은 95년부터 2년간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다녀온 다음 맥주 레스토랑, 빵 체인 스토어 등 100개 이상의 아이템을 검토한 끝에 인터넷 쇼핑몰을 선택했다. 지난해 펴낸 저서 라쿠텐 스타일에서 그는 “인터넷과 상거래, 인터넷과 금융, 인터넷과 여행 등 이종의 서비스를 묶으면 ‘범위의 경제’로 비용을 줄이며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썼다. 21세기 직전 마이크로소프트(MS)나 휼렛패커드(HP)가 주도한 미국발 ‘신경제’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라쿠텐이 온라인 쇼핑 등 내수 기반 업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미키타니 회장은 항상 미국식 사고를 앞세운다. 일본에 뿌리에 두고 있지만 1억 일본인보다는 60억 전(全) 지구인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도 여기서 나왔다. ‘영어 못하면 해고(No English, No Job)’ 정책이 대표적이다. 7년 전 미키타니 회장은 사내 모든 임직원의 의사소통, 문서 작성을 영어로만 하도록 지시했다. ‘사내 영어 학습회’를 운영하고 야근 대신 ‘영어 야학’을 장려하면서 반대하는 사원에게는 “그냥 나가라”고 했다. 라쿠텐 직원들의 토익 점수는 2010년 평균 526점에서 5년 뒤 800점으로 올랐다. 라쿠텐이 2012년 캐나다 e북 유통 업체 코보를 인수한 이면에는 직원들이 영어 사용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난 것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도 나온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라쿠텐의 과감한 글로벌 M&A 행보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를 제외하면 일본 기업들 사이에선 상당히 드문 케이스”라며 “영어 공용화를 비롯해 창업자가 가진 글로벌에 대한 관심만큼 그 기업이 글로벌화되는 것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미키타니 회장은 삶의 방식도 윗세대 일본 경영인과 차이가 두드러진다. 작은 집에 소박하게 사는 게 미덕인 일본에서 도쿄 중심가 시부야의 4억9000만 엔(약 50억원)을 호가하는 호화 맨션을 보란 듯이 사들인 것부터가 파격이다. 실제 대부분의 시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저택에서 보낸다. 현재 미키타니 회장의 재산은 포브스 추산으로 60억 달러(약 7조원)에 이른다. 정보기술(IT) 부문에선 세계 29위, 일본 4위의 부자다.

프로야구팀 창단하고 바르셀로나 후원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식 사고방식을 강조함에 따라 라쿠텐의 경영 방식은 윗세대와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도 피하지 않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라쿠텐은 최대 경제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를 탈퇴했다. 게이단렌이 전력 업계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발전과 송전 분야를 분리하려는 정부의 개혁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키타니 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전력업계를 보호하려는 게이단렌의 태도를 참을 수 없다”는 글을 올려 탈퇴서를 대신했다. 1년 뒤 그는 새로운 경제단체인 ‘신경제연맹’ 결성을 주도했고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미디어 산업 진출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미 2005년 라쿠텐은 지상파 도쿄방송(TBS)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다. 2007년에는 기존 TBS 경영진과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대결까지 벌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방송의 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일본에서 지상파 방송 인수 시도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그는 “인터넷과 방송은 충분히 결합될 수 있다. 흥미롭고 해볼 만한 사업이지 않은가”라며 일반 대중의 통념에 저항했다. 지금까지도 라쿠텐의 TBS 인수 시도는 2000년 블로그서비스 업체 ‘라이브도어’의 후지TV 인수 시도와 함께 일본 미디어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라쿠텐은 올 7월 FC바르셀로나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바르셀로나 EPA=연합뉴스]

라쿠텐은 올 7월 FC바르셀로나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바르셀로나 EPA=연합뉴스]

색다르고 흥미로운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회사 성향에 맞게 라쿠텐은 전 세계 프로 스포츠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올 7월 라쿠텐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FC바르셀로나와 4년간 2억6200만 달러(약 3000억원)에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두 달 뒤에는 미국 프로농구(NBA) 직전 시즌 우승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도 3년간 총 6000만 달러(약 680억원)에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적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30)와 농구 스타 스테픈 커리(29)가 가슴에 라쿠텐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는 셈이다. 미키타니 회장은 “우리는 스포츠를 사랑한다. 스포츠에는 많은 감정, 이야기, 웃음과 눈물이 있다”며 계약을 반겼다.

요미우리·한신 등 기존 구단들이 매우 보수적인 일본프로야구(NPB)에서도 라쿠텐은 유일하게 신규 진입에 성공한 사례다. 2005년 창단한 도호쿠(東北) 기반의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1965년 NPB 창설 이후 50년 만에 처음 생긴 프로야구팀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매각설이 다시 나도는 넥센 히어로즈의 가장 유력한 인수처로 꼽히는 곳이 카카오”라며 “이번에도 라쿠텐 루트를 따라갈지 흥미롭다”고 말했다.

포인트 쓸 수 있는 가맹점만 4만2000개

카드업도 겸업하고 있는 라쿠텐의 수퍼 포인트 제도는 일반적인 마일리지 적립 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가입 점포 4만2000곳을 기반으로 사실상 화폐 기능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2014년 미키타니 회장은 도쿄 시부야에 ‘라쿠텐 카페’를 만들었다. 미국의 ‘아마존 고’보다 2년 먼저 온라인 비즈니스 기업이 역으로 진짜 상점을 낸 경우다. 이곳에서는 커피 등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좌석엔 전기 코드가 설치돼 있다. 라쿠텐 카드로 결제할 경우 커피·홍차가 반값이다. 카페에서 식음료 구입 시 발생하는 포인트로는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 이치바에서 온라인 쇼핑을 할 수도 있다. 라쿠텐이 알뜰폰(MVNO)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통신요금도 수퍼 포인트로 낼 수 있다. 여행을 갈 때 라쿠텐 포인트로 할인받는 건 물론이다. 현재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인터넷 기업, 유통업체인 롯데·신세계까지 한국에 어떤 방식으로 응용할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마일리지 적립 서비스다.

한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금융업과 온라인 판매를 결합하려는 카카오의 움직임은 ‘라쿠텐뱅크-라쿠텐 수퍼 포인트(결제포인트)-라쿠텐 이치바(소매)’가 그 원형”이라며 “일각에서 마구잡이로 비판하는 카카오의 M&A도 라쿠텐의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키타니 회장은 이미 10년 전부터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라쿠텐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쿠텐 경제권’ 구상을 발표했다.

실제로 카카오가 최근 선보인 서비스 중에선 카뱅을 차치하고라도 라쿠텐의 서비스를 응용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7월 시작한 미용실 정보 서비스 ‘카카오 헤어샵’은 ‘라쿠텐 뷰티’와 유사하다. 라쿠텐 뷰티는 일본 내 약 6000곳의 미용실을 검색하고 실시간으로 예약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또 라쿠텐이 2001년 라이코스 재팬을 사들인 것처럼 카카오도 2011년 포털 서비스 ‘다음’을 인수했다. 카뱅이 사업 초기부터 모델로 삼은 라쿠텐뱅크는 출범 10년 만에 누적 계좌 600만 개, 연평균 45%씩 성장했다.

김동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핀테크를 비롯해 한국 인터넷 사업자들의 최근 플랫폼 확장 전략은 약 10년 전 라쿠텐이 선제적으로 시도해 온 것”이라며 “카카오뿐 아니라 네이버 역시 ‘네이버 쇼핑-네이버 페이-네이버(포털)’를 연결해 사용자의 체류 시간, 소비액 등을 늘리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롯데도 지주사 소속 경영혁신실 주도로 라쿠텐의 유통·금융 결합 비즈니스 모델을 집중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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