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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경제 용어]제로레이팅

중앙일보

입력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를 아실 겁니다. 스마트폰으로 내 주위에 출몰하는 귀여운 포켓몬을 잡는 이 게임은 포켓몬이 많이 잡히는 강원도 속초로 사람들을 불러모을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을 자랑했죠. 화려한 AR 그래픽을 장시간 구현하다 보니 이용자 한 명이 이 게임을 하는 데 쓰는 데이터 용량만 월평균 250MB가량 됐습니다. 요금으로 환산하면 6000~7000원 정도입니다.

콘텐트 제작자가 대신 내주는 데이터 요금이 제로레이팅 #통신비 인하 효과 있지만, 대기업 콘텐트만 유통될수도 #민경욱 "이통3사 제로레이팅 30건 중 공공 서비스 단 1건"

하지만 SK텔레콤 가입자들은 포켓몬고를 하면서 이 데이터 요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포켓몬고를 만든 게임회사 나이언틱이 SKT와 제휴를 맺고 이용자들의 데이터 요금을 대신 내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게임이나 동영상·쇼핑몰 등 콘텐트 사업자가 이동통신사와 제휴를 맺고 자사 콘텐트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요금을 대신 내주는 제도를 '제로레이팅(Zero rating)'이라고 합니다. 일명 '스폰서 요금제'라고도 하지요.

정부도 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는 이 '제로레이팅'에 일단은 긍정적입니다. 중독성 있는 게임이나 동영상을 장시간 이용하다 소비자들이 '요금 폭탄'을 맞는 일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일각에선 제로레이팅이 고객 요금을 대신 내줄 수 있을 만큼 자금력이 풍부한 콘텐트 사업자들의 서비스만 유통하는 '불공정 거래' 소지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가령 SK텔레콤은 자회사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쇼핑몰 11번가를, KT는 콘텐트 자회사 지니뮤직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 요금을 면제해주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모바일 쇼핑몰이나 음원사이트 제작자들은 대기업 자회사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제로레이팅 관련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은 "이통 3사의 제로레이팅 서비스는 총 30개에 달하지만, 이를 공공 분야에 제공하는 경우는 KT와 부산시청 제휴로 내놓은 '재난 영상 전송 시스템' 1건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로레이팅이 대기업 지배력 확장 수단으로만 이용되지 않도록 정교한 제도들도 마련돼야 하겠네요.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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