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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도쿄 고깃집 사장님과 배우인 그의 아들이 한국 이름 지키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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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한국은 내게 소중한 인연을 자꾸 선물한다. 그중 하나는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와의 만남이다. 1979년 창립된 곳인데 최근 몇 년은 특히 ‘재일코리안’에 관한 연구에 힘쓰고 있다. 연구소와 나의 인연은 도쿄의 한 고깃집에서 시작한다.

도쿄에서 근무할 때 자주 다녔던 고깃집이다. 특별히 맛있다기보다 그 집 사장님과 친해져서 갈 때마다 긴 대화를 즐겼다. 처음 간 건 재일코리안 시인 김시종 선생의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郎)’ 수상식 뒤풀이 때다. 오사라기 지로 상은 아사히신문이 주최하는 문학상이다. 김 선생은 그해 출간된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로 이 상을 수상했다. 김 선생이 직접 경험한 4·3사건이 주 내용이다. 알고 보니 고깃집 사장님도 재일코리안으로 4·3사건 행사 등 도쿄에서 열리는 재일코리안 문화 후원을 많이 해온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오는 기자도 많다고 한다. 단, 사장님은 취재에 협조는 하되 자신의 이름은 기사에 안 나오도록 조건을 건다. “장사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이유다. 한국 이름에, 한국어까지 잘하지만 드러내놓고 재일코리안 문화 활동을 지원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연극·뮤지컬 담당 기자였는데 이야기 도중 사장님의 아들이 내가 일본에서 제일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연극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후 아들도 몇 번 인터뷰했다. 재일코리안은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취직이 어려운 시절이 길었다. 이 때문에 고깃집이나 빠찡꼬 같은 장사를 하거나 실력으로 인정받는 운동선수·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일본 이름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사장님의 아들은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소속사에서 일본 이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아들은 거절했다고 한다.

한국 관련 작품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 굳이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걸까. 그는 나와의 첫 인터뷰 후 “기사를 쓸 때 이름 한자 위에 적는 발음을 히라가나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일본에선 일본 이름이면 한자 위에 히라가나로 쓰고, 외국 이름이면 가타가나로 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람’이라는 재일코리안의 정체성. 사장님과 아들을 통해 재일코리안 관련 문화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도쿄를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사장님은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도 “서울에 가면 이 사람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분이 바로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김환기 소장이다.

김 소장은 재일코리안 문학을 연구하면서 사장님과 자주 만나는 사이라는데, 첫 만남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일본학연구소에서 재일코리안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계획 중인데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6년 동안 정치·경제, 사회·교육, 예술·체육의 분야별로 연구하는 프로젝트다. 나는 영화나 연극 관련 부분을 맡기로 했다.

사장님은 연구 관련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알고 지내라는 뜻으로 소개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맞춰 내가 서울에 온 것처럼 됐다. 생각해보니 기자로 일하면서 관심 있게 취재해 온 분야다. 또 일본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수 있는 내 역할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다른 인연이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이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솟는다. 기회가 된다면 연구뿐만 아니라 배우나 감독을 초청해 심포지엄도 열어볼 생각이다. 언젠가 고깃집 사장님의 아들도 초대해 일본에서 재일코리안 배우로서 활동하며 겪는 이야기를 한국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